인간 감정의 3D 형태화, 14가지 분류로 동물 사진을 기묘하게 분류시킨 인공지능의 학습, 기계가 과학 철학서를 학습한 뒤 벌이는 자기 사유, 인공지능의 기계적 저장이 아닌 기억을 통한 영화의 재구성. 이것은 '아직도 인간이 필요한 이유'전에 전시된 최첨단 인공지능의 학습능력을 활용한 예술 작품이다. 도래할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이 필요한 이유를 예술에서 찾은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아트센터 나비(이하 나비)는 ‘아직도 인간이 필요한 이유: AI와 휴머니티’전을 2016년 11월 15일~2017년 1월 20일 연다.
2016년 봄 알파고와 인간의 대결을 통해 AI(Artificial Intelligence, 이하 인공지능)가 성큼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인간의 지능을 이긴 인공지능에 대한 국내적 관심은 급격히 비대해졌지만, 인공지능이 가져올 미래에 대한 정보와 인식은 아직까지 미비한 상황이다. 2000년 설립 이래 예술과 기술의 접점을 모색해온 아트센터 나비는 이미 2년 전부터 인공지능에 대한 대비와 연구를 지속해왔다. 이번 전시는 그동안 작가들과 함께 연구하고 제작지원한 결과를 선보이는 자리다.
전시에 앞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은 “(이 전시는) 인공지능의 발달이 우리 삶과 인간성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를 고민하며 나비와 참여 작가 그리고 아트센터 나비 창작 연구소 이아이랩(E.I. Lab, 이하 이아이랩)이 연구한 결과다. ‘아직도 인간이 필요한 이유’란 제목도 내가 직접 지었다”며 “답은 Yes, and More(예스, 앤 모어)!다. ‘인간이 아직도 필요할까?’가 아니라 앞으로 인간의 역할은 더 커질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어 “인공지능은 인간이 낳은 엄청난 능력을 가진 아이와 같다. 하지만 혼자 서지도 먹지도 못하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못하는 아기라 부모인 인간이 필요하다. 가장 중요한 건 아이를 키울 때처럼 (인간의) 윤리의식을 가르치는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이 밖에도 인공지능을 학습시키면서 인공지능이 더욱 인간과 가까워지길 바라다보니 결국 ‘인간이 도대체 뭐지?’란 의문점에 봉착했다며, “부모가 되면 사람이 된다는 말을 실감했다”고 말을 이었다. 이 과정에서 기계와 달리 인간이 가진 고유성(Humanity)으로 여겨졌던 창의성, 직관, 감정 등에 대해 질문하면서 인간과 기계의 관계를 재조명하게 됐다고 밝혔다.
구글의 딥 드림(Deep Dream)을 활용해 인간이 그린 그림을 딥 드림이 완성하도록 한 하싯 아그라왈, 기계 학습(Machine Learning)을 활용해 저널리스트 및 연구자들이 지도상에서 인간적 사회적 과학적 의미를 갖는 유사 패턴을 빠르게 찾을 수 있도록 돕는 골란 레빈, 카일 맥도날드, 데이비드 뉴버리, 인공지능이 기억을 통해 영화 '블레이드 러너'를 재구성하도록 한 테렌스 브로드 등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한 해외 작가의 작품들이 국내 최초로 전시된다.
또한 '황제의 소유인 것' '방부처리 된 것' '상상의 것' '멀리서 보면 파리 같은 것' 등 14가지 '말도 안되는' 동물 분류법으로 무작위 동물 사진을 분류시킨 신승백 김용훈의 신작도 전시됐다. 이 작품은 인공지능 연구에서 중요한 키워드인 ‘분류’에서 발견되는 인간의 작위성과 불완전성 대해 질문한다. 과학 철학자들이 저술한 문장 30만 개를 학습한 기계가 기술에 대한 새로운 문장을 생성하며 자신을 사유하는 작품을 제작한 양민하, 기계 학습을 이해하기 위해 기술 발전사에 대한 자신의 연구과정을 웹과 가상현실(VR)로 구현한 최승준 등 아트센터 나비와 국내 미디어 아티스트들이 함께 사전 워크숍을 통해 제작한 신작도 전시된다. 전시 초입에는 이아이랩이 제작한 인공지능 로봇 팔과 인간이 하키 게임을 하는 ‘인공지능 에어 하키’ 외 IBM 왓슨, 구글 마젠타 등을 활용한 인공지능 관련 프로덕션 3점도 처음으로 공개한다.
최두은 큐레이터는 인공지능은 인간의 지능을 연상시키는 표현 때문에 인간지능을 대체할 위협적인 기술로 여겨지던 문제를 짚으며, “(그래서) 요즘은 인공지능(AI)란 표현 외에도 ‘확장된 지능(Augmented Intelligence)나 ’인지 컴퓨팅(Cognitive Computing)'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현재까지도 인공지능을 보는 다양한 관점이 있고, 아직까지 답은 없는 상태다. 어쩌면 이미 늦은 때일 수도 있지만. 그래서 이번 전시를 기획하게 됐다”고 전시를 기획한 의도를 설명했다.
간담회에 함께 참석한 알만도 아리스만디 IBM왓슨 부사장은 기술에 치중된 것처럼 보일 수 있는 이번 전시를 어떻게 보았냐는 한 기자의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했다. “예술을 창작한다는 건 초현실적인 일이다. 20세기 예술가 달리는 당시 사람들이 이해 못 할 추상화를 그렸다 현재의 인공지능도 아직 연구의 초기 단계이며 마찬가지로 인공지능과 예술의 결합도 실험적인 단계다. 여전히 아름답지만 명작을 기대하기 힘든 상황으로, '경계를 넓히는(push the boundary)' 시도 자체가 인상적이다. 달리는 당시에도 유명했지만 현재는 선구자로 역사에 남았다.” 전시는 2017년 1월 20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