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대 추천작가 ㉑ 서울시립대 허누리] 경계 벗어나 긍정 범위 넓히기

다아트 윤하나 기자 2017.01.06 17:32:36

허누리, '언바운디드네스(Unboundedness)'.55 x 32 x 5cm, 혼합매체. 2016. (사진 = 허누리)

 

매일같이 어제 미룬 일을 오늘 떠맡아 하거나, 내일 있을 시험을 위해 밤새워 공부하듯이 살아간다고 생각하면 눈앞이 아찔하다. 이와 마찬가지로 어릴 때 공부하지 않아서 지금 이렇게 살고 있나?’ 혹은 지금 열심히 일해야 나중에 힘들게 살지 않을 거야같은 고민들이 오늘을 불안하게 만든다. 과거를 탓하고 미래를 두려워하며 오늘을 살아가는 평범한 우리에게 허누리 작가의 작품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작품에는 경계가 사라진 채 두 개의 시계가 하나로 맞붙어 있다. 시계 하나가 현재를 가리키고 있다면, 과연 우리 각자의 머릿속 또 다른 시계는 어느 시간대를 살아가고 있을까?

 

아무런 숫자도 표시되지 않은 채 초침을 따라 시간도 함께 흐른다. 두 개의 초침이 움직이는 모습을 상상하다보면 어느새 뫼비우스의 띠가 머릿속에 그려진다. 작품 '언바운디드네스(Unboundedness, 무한성)'를 통해 작가는 자신이 생각하는 시간의 종속적 성격을 잘 드러낸다. 과거와 미래에 구속돼 계속해서 흘러만가는 시간의 덫을 작가는 오직 시계 2개로 표현해냈다.

 

허누리, '올려다보기'. 50 x 32 x 26cm, 스틸 그레이팅, 철, 거울. 2015. (사진 = 허누리)

 

막 학부를 졸업하고 대학원에 진학 예정인 허누리 작가는 경계와 구분 짓기가 만들어낸 불안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며 이에 관해 작업해왔다. 흔히 불결하고 냄새 난다는 인식 때문에 가까이만 가도 눈살을 찌푸리게 되는 하수구에 대한 작품 올려다보기를 보면 그가 추구하는 인식의 전환을 이해할 수 있다. 길 위에서 오염돼 불필요한 물을 흘려보내기 위해 존재하는 하수구는 모두가 기피하지만 결국 모두 우리가 직간접적으로 만들어낸, 인간의 부산물이다.

 

작가는 각각 원통형과 직육면체로 두 가지 버전의 작품을 만들고 각각 내부에 까만 물과 거울을 넣었다. 길거리가 아니라 전시장에 놓인 작품임에도 하수구의 격자모양 덮개(스틸 그레이팅)를 보고 호기심 반 불안함 반의 얼굴로 내부를 들여다보면 이내 하수구 속 거울에 자신의 얼굴을 비추게 된다. 까만 물을 담은 우물도 마찬가지다. “물이 까매질수록 모습이 잘 비쳐요라는 작가의 말이 그저 방법적인 말로만 들리지 않았다.

 

비 케어풀(Be Careful)’은 만약 진짜라면 노심초사하며 조심히 다뤄야 할 것 같은 고려청자 문양이 그려진 풍선 모양의 의자다. 제목의 조심하라는 경고 메시지와는 대조적으로 이 작품은 사람이 앉을 수 있는 의자로 제작돼 아이러니함을 더한다. 문화재 하면 흔히 떠올리는 고려청자의 영원불변할 것 같은 가치가 사실은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는 도발적인 상상으로 만들었다. 쉽게 터지는 풍선도 의자가 됐으니 역으로 생각하면, 연약하게 여겨지는 가치도 단단한 의미를 지닐 수 있음을 나타낸다.

 

허누리, '비 케어풀(Be Careful)'. 149 x 94 x 52cm, 혼합매체. 2016. (사진 = 허누리)

 

가치의 전복으로 넓어지는 행복의 영역


가치의 추구는 때때로 맹목적인 성향을 띤다. 허누리는 가치판단에 의한 경계 구분이 내포한 배타성에 주목한다. 좋고 나쁨부터 옳고 그름, 정상과 비정상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따지는 가치의 기준은 불분명하지만 대체로 매우 강경하다. 작가는 이렇게 우리 주변에 만연한 상호 배타적인 구분은 이미 불가피하기 때문에 부정할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 다만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 가치판단으로 인해 누군가에겐 상처가, 나에겐 불행이 될 수 있다고 상기시켜 나간다. 

 

은가비: 빛나다는 영국 작가 마크 퀸(Marc Quinn)이 런던의 트라팔가 광장에 설치한 조각 임신한 앨리슨 래퍼으로 잘 알려진 구족화가 앨리슨 래퍼(Alison Lapper)에 대한 작품이다. 팔과 다리를 갖지 않고 태어나 부모에게 버림받고 고아원에서까지 차별을 받고 자란 래퍼는 여기에 좌절하지 않고 예술가의 삶을 살고 있다. 작가는 래퍼와 그의 아이 실루엣을 조각해 만들고 그 위에 빔을 비춰 은은하게 빛이 나도록 했다. 래퍼의 이야기를 접한 작가는 장애와 비장애를 나누는 기준에 대해 자문하며 이 작업을 하게 됐다고 밝혔다.

 

허누리, '수지여래동상(樹脂如來動像)'. 가변설치, 혼합매체. 2015. (사진 = 허누리)

 

그런가하면 통상 서고 앉거나 누워있어 근엄함을 상징하는 불상이 농구를 하는 역동적인 작품을 만들기도 했다(‘수지여래동상’). 그는 인간의 삶을 담고 있을 종교가 신성시되고 때로 맹목적으로만 이해되는 현상을 이해할 수 없었다고 한다. 고정적인 이미지를 통해 이야기를 전개시키는 성서와 불경의 모티프를 따 시리즈를 제작하기도 했다.

 

자칫 교훈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는 메시지에 대해 작가는 경계를 나누는 것이 나쁘다고 말하는 건 아니다. 젊고 늙음에 대해서도 젊음의 기준을 넓히면 늙어가는 것이 두렵지 않듯이 긍정의 범위를 넓혀야 행복하지 않을까?”라고 답했다. 달리 말하자면 작가는 예술을 통한 가치의 전복으로 비정상의 범위를 점차 좁혀 나가고 있는 듯하다.

 

허누리, '환(環)공포증'. 가변설치, 혼합매체. 2016. (사진 = 허누리)

허누리 작가. (사진 = 윤하나 기자)

 

이윤석 서울시립대 환경조각학과 학과장 

"통념의 이미지를 다른시각으로 재해석" 

 

2017년도 졸업예정인 허누리 학생은 4년간 매우 성실한 자세로 학업 및 창작에 몰두하였으며, 재학 중 우수학생에게 수여되는 지원금으로 학내 개인전(New Flash)을 개최한 바 있습니다다. 그 전시회에서 보편적인 통념 속의 이미지들을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고 재해석하여 작품화한 작업들을 발표하였는데 작품의 창의성이나 완성도가 매우 뛰어났다고 생각합니다.

 

CNB저널을 통해 허누리 학생이 소개됨으로써 학생 개인적으로나 저희 학교의 많은 학생에게 의욕과 희망을 북돋우어 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 생각해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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