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전시] 아트선재센터가 이야기하는 코스미즘·도운 브레익스·대우

세 키워드로 층마다 다른 콘셉트 기획전

다아트 김금영 기자 2017.04.07 09:22:52

(CNB저널 = 김금영 기자) 코스미즘, 도운 브레익스, 대우. 아트선재센터가 꾸린 세 전시의 키워드다. ‘삼성의 뜻은 죽음을 말하는 것이다’는 대형 배너 작업으로 화제가 된 장영혜중공업의 개인전을 마친 아트선재센터는 세 전시를 한꺼번에 선보이며 임팩트를 이어간다. 장영혜중공업의 전시가 3층에 걸쳐 작가들의 작업을 살펴보는 형태였다면, 이번엔 층마다 대표 키워드를 바탕으로 각기 다른 전시를 꾸려 다양성을 갖췄다.


① 국내 첫 개인전 모티가 말하는 '코스미즘'
"지구의 전쟁은 태양과 관련있다"


멜빈 모티, '코스미즘(Cosmism)'. 28분, 4K 비디오, 사운드, 컬러. 2015.(사진=아트선재센터)

전시장 1층은 국내에서 첫 개인전을 갖는 멜빈 모티의 작품이 채웠다. 기후 변화와 국제적 갈등의 상호 관련성을 다루는 필름 ‘코스미즘’ 영상과 6점의 실크 연작 ‘클러스터 일루전’, 그리고 작가가 스스로 출판한 아티스트북을 선보인다. 이번 전시에서 그의 대표 키워드는 코스미즘(Cosmism)이다.


코스미즘은 20세기 초반 초자연적이고 불가해한 이론을 우주 과학과 결합시킨 러시아 사상가들의 그룹 코스미스트(Cosmists)의 사상적 개념에서 출발한다. 코스미스트들 중 알렉산더 치제프스키는 태양의 표면 폭발이나 흑점 등 태양의 활동이 활발한 시기에 지구에서 전쟁, 혁명, 전염병, 자연재해가 증가하는 것을 발견했다. 반대로 태양의 활동이 더뎌질 때에는 군사적, 정치적 사건이 줄어들었다며, 이 현상을 히스토리오메트리(historiometry)라고 불렀다.


멜빈 모티, '코스미즘(Cosmism)'. 28분, 4K 비디오, 사운드, 컬러. 2015.(사진=아트선재센터)

이 히스토리오메트리를 가장 명확하게 설명해주는 시기가 2001년이라고 멜빈 모티는 짚는다. 특히 9월의 활동이 눈에 띈다고. 어찌 이때를 잊으랴. 전 세계적으로 큰 충격을 안긴 9.11 테러 사태가 발생했다. 멜빈 모티의 필름 ‘코스미즘’은 9.11 사태와 이라크 전쟁에서 나타난 흔적이 태양의 자취와 연관돼 있다며, 이 점을 활용해 만들어졌다. 태양의 활동으로 인한 기후 변화가 국제적 갈등과 멀리 떨어져 있지 않고, 오히려 상호 관련성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이를 설명하듯 앞이 보이지 않는 뿌연 안개와 강렬하게 타오르는 붉은 태양, 그리고 참사 앞에 쓰러지는 사람들의 모습이 영상에서 반복된다.


그리고 6점의 실크 연작 ‘클러스터 일루전’이 더해지며 전시를 완성한다. 도쿄에서 활동하는 기모노 염색 장인과의 협업으로 제작된 이 작품은 구름 사이를 뚫고 비치는 태양빛을 묘사한다. 멀리서 보면 사진처럼 보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실제 일본 기모노에 쓰이는 패턴과 그림이 보인다. 부분만으로는 전체를 볼 수 없고, 전체에서는 부분을 세세하게 보기 힘들듯, 이 세상에 존재하지만 잘 보지 못하는 상호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느껴지는 지점이다. 전시는 5월 21일까지.


멜빈 모티, '클러스터 일루전(Cluster Illusion)'. 설치 전경.(사진=아트선재센터)


② 이주요/정지현의 공간 '도운 브레익스, 서울'
"1979년에 뭐 했어요?"에서 이어지는 스토리텔링


이주요/정지현, '도운 브레익스(Dawn Breaks)'. 퀸즈뮤지엄, 뉴욕. 2015.(사진=아트선재센터)

1층을 지나 2층으로 올라가면 분위기가 반전된다. 1층 전시가 적막한 분위기 속 미디어 작업이 돋보였다면, 2층에서는 독특한 오브제들이 여기저기 모여 있는 왁자지껄한 창고 같은 느낌이다. 이 공간에서는 이주요/정지현의 ‘도운 브레익스, 서울’전이 열리고 있다.


멜빈 모티가 지구의 환경에 대한, 넓은 이야기를 다뤘다면 이주요/정지현은 보다 가까운 이야기로 시점을 옮겨 왔다. 작가들이 집중하는 건 자신들이 살아 온 삶과 사회를 토대로 한 새로운 스토리텔링이다. 이주요는 20여 년 동안 여러 나라의 다른 도시들로 이주하면서 경험한 타자의 문제와 그 개별 존재의 불안, 분노, 부족, 약함 등을 비정형적 설치 방식, 특유의 오브제, 드로잉과 아트북을 통해 보여주는 작업을 이어 왔다.


정지현은 도시 환경에 부유하는 부산물과 용도 폐기된 산업자재에 관심을 갖는다. 이들 재료에서 조각의 기능과 움직임을 발견한 그는 연기, 빛, 바람, 소리 같은 보이지 않거나 사라지는 물리적 움직임까지 더해 조각을 만든다. 현실적 필요에 의한 삶이 끝난 물건들이 작가에 의해 새로운 몸으로 탄생되고, 여기서 작가의 새로운 스토리가 시작된다.


이주요/정지현, '도운 브레익스(Dawn Breaks)'. 광주비엔날레. 2016.(사진=아트선재센터)

두 작가가 만나서 만든 무대는 “1979년에 뭐 했어요?”라는 단순한 질문에서 시작됐다. 이에 관해 이주요 작가는 “둘이 처음 만났을 때 어떻게 살아 왔는지 궁금해서 꺼낸 질문이었는데, 그때 정지현 작가는 태어나지도 않았을 때였다. 하지만 1979년부터 점점 시간이 흐르고 이야기가 쌓이면서 둘이 살아 온 다른 경험에 관한 이야기가 끊임없이 생성됐다”고 설명했다. 어릴 적 수많은 물리적 재료들을 접한 이들은 손으로 무엇이든 만들고 이야기를 만들어나가는 게 얼마나 당연한 일인지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전시명인 ‘도운 브레익스(Dawn Breaks)’는 ‘밤이 지나고 동이 트기 전(Night Falls Dawn Break)’에서 나온 제목이다. 본격적으로 날이 밝기 전 작가들이 규제 없이 모험을 할 수 있도록 스스로 상정한 시간대다. 이 시간대에 풀어지는 작가들의 이야기는 기존 논리에 속하지 않은 자유로운 상태다. 또 여기에 이들은 다른 동료 작가들, 만드는 사람들을 초대해 시, 그림, 조각들을 장치 위에 걸거나 놓아 움직이게 하며 또 다른 스토리를 만든다. 결국 이 창고 같은 공간은 동이 트기 전 작가들이 파티를 벌이는 하나의 무대와도 같다. 이야기는 5월 14일까지 펼쳐진다.


③ 평가 갈리는 '기업보고서: 대우 1967~1999'
우상화냐 vs 객관화냐


'기업보고서: 대우 1967~1999'가 열리는 전시장 일부. 대우의 주요 광고 영상이 보여진다.(사진=연합뉴스)

3층은 전시 공개 이전부터 많은 관심을 받았다. 1~2층 전시와 비교해도 분위기가 완전 색달라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는 공간이기도 하다. 1967년 대우그룹 창업에서부터 1999년 해체에 이르기까지 대우그룹의 주요활동 사항에 대한 기록물을 연구자와 작가의 관점으로 재구성한 ‘기업보고서: 대우 1967~1999’전이다.


대우그룹에 대한 평가는 현재까지도 엇갈리고 있다. 이전 대우그룹은 꿈의 기업이었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고 외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은 글로벌경영을 강조하며 국내를 넘어 해외까지 발을 넓혔다. 붕괴 이전 1998년엔 41개 계열사, 396개 해외법인에 자산총액 76조 7000억 원을 달성하며 재계 순위 2위까지 올랐다.


하지만 초고속 성장을 이어가던 대우그룹은 1999년 국제통화기금(IMF) 위기가 닥치면서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김 전 회장이 문어발식 확장으로 그룹의 덩치만 키워 사실상 부실했다는 지적이 이어졌고, 분식회계와 횡령 등의 혐의로 17조 9253억 원의 추징금을 선고받았다. 결국 기업은 워크아웃으로 해체되고 계열사는 뿔뿔이 흩어졌다. 당시 대기업의 해체는 사회적으로 큰 파장과 충격을 몰고 왔다.


김태동이 제작한 '대우조선 1973-1999'를 살펴보는 전시물.(사진=아트선재센터)

대우그룹을 기존 그룹이 시도하지 못했던 세계경영에 나서 혁신을 이끌었던 기업으로 기억하는 이도 있고, 겉만 화려하고 내실은 부족한 부실 경영으로 나라가 휘청거리게 만든 악덕 기업이라고 기억하는 이도 있다. 이 가운데 ‘기업보고서: 대우 1967~1999’전이 아트선재센터에서 공개됐다. 해체되지 않았더라면 올해 창립 50주년을 맞는 시기에 대우그룹의 과거를 돌아보자는 취지다.


그런데 전시를 마련한 주체에 시선이 쏠렸다. 아트선재센터는 대우재단의 학술문화사업의 일환으로 1998년 설립됐고, 이 공간을 이끌어나가고 있는 김선정 관장은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딸이다. 이에 “대우그룹의 우상화에 치우치는 게 아니냐”는 논란도 있었다.


이와 관련해 전시를 기획한 한금현 상지대 디자인학부 교수는 ‘기록화’에 중심을 뒀다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한 교수는 “처음 전시 기획 의뢰를 받고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고민됐다. 그 결과 어떤 관점에 치우치는 게 아니라 아카이브 구축에 중점을 두기로 했다. 한 개인을 비롯해 기업이 소장한 자료들을 함께 전시해 보고서를 보듯 대우그룹의 흔적들을 읽을 수 있도록, 외부인이 바라보는 객관적인 시선으로 접근하려 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역시 감성적인 부분이 발견되기는 한다. 전시장 한켠에 김 전 회장이 공장에서 타고 다녔다는 자전거가 놓여 있다. 이를 보고 대우그룹의 과거 빛나는 성과를 떠올릴지, 우상화라고 비판할지는 보는 이의 몫이다.


인포그라픽스 섹션에 전시된 '대우조선 30년의 성과'. 이영준 연구자와 권영찬 디자이너가 참여했다.(사진=아트선재센터)

다른 부분들은 주로 자료를 객관적으로 보여주는 데 집중했다. 전시는 크게 인포그래픽스, 사진 영상 전시, 라이브러리 세 파트로 나눠진다. 인포그래픽스에는 세 연구자가 대우를 산업기술사, 디자인 연구, 기계비평의 측면에서 분석한다. 최형섭은 대우 연대표를 국내 산업기술사 안에 병치시켜 보여주고, 박해천은 대우가 추진했던 기업전략을 제품 광고, 언론 보도, 디자이너 인터뷰 등 외부 문건을 통해 바라본다. 이영준은 1970년대 후반부터 생산한 대우조선 선박들을 자체적으로 분류하고 그래픽화해 보여준다.


사진 영상 파트에는 대우그룹의 주력사 기록사진, 광고 영상이 전시된다. 가족을 주요 콘셉트로 내세웠던 대우그룹의 광고 영상은 아날로그적인 감성으로 전시와는 별도로 과거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기도 해 묘하다.


마지막으로 라이브러리에는 대우재단이 출판한 도서들이 일부 전시된다. 그리고 초기 대우조선이 세워졌을 때부터 수집된 실물 자료, 대우 계열사에 종사했던 임직원들의 물품들이 전시된다. 필기구, 명찰, 손으로 쓴 보도자료 등이 눈길을 끈다. 한 교수는 “실물 자료들은 기업의 역사일 뿐 아니라 당시 한국의 기업문화를 읽을 수 있게 한다. 특히 개인이 보관한 사적인 물품들은 회사원들의 공적인 삶이 어떻게 사적인 삶과 연계되는지도 보여준다”고 말했다.


전시와 관련해 행사도 함께 진행된다. 사단법인 대우세계경영연구회(회장 장병주)는 전시 기간 동안 매일 오후 5시부터 6시 20분까지 영화 ‘내 아버지의 연대기’를 상영한다. 산업화 시대 아버지 세대의 삶을 파노라마 형식으로 조명한 기록영화로, 대우의 100여 명 임직원들의 증언을 담고 있다. 이 역시 우상화로 보일지, 감동으로 다가올지는 관람객의 몫이다. 전시는 4월 16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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