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작가 공모 - 일러스트 근영] ‘공감 부재의 시대’에 그림으로 말걸다

공감 강요? 우리에게 필요한 건 귀 기울이기

다아트 김금영 기자 2017.04.21 13:37:00

CNB저널은 제5회 표지 작가 공모전을 실시하고, 일러스트 분야의 당선 작가로 근영을 선정했다. 근영 작가의 작업을 소개한다.


근영, '불면증'. 캔버스에 오일, 909 x 727mm. 2015.

(CNB저널 = 김금영 기자) 힘든 업무를 마치고 퇴근한 직장인이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친구들과 만난다. 쓰레기 상사 이야기를 하자 친구들은 같이 욕을 해준다. 그러다가 한 친구가 말한다. “그래도 너희 회사 정도면 좋은 곳이야” “겨우 그 정도 가지고 힘들다고 그래?” “너 정말 부럽다” 등. 그리고 마무리는 “힘내. 넌 우리 회사보단 낫잖아.” 그리고 이 직장인은 속으로 생각한다. ‘전혀 위로가 안 돼.’ 웹툰 ‘열정호구’의 한 장면이다.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시대’라는 말이 흔히 쓰인다. 직장인뿐 아니라 현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고민을 안고, 이 고민을 함께 공감하기 위해 이야기를 한다. 예능 프로그램 ‘안녕하세요’를 비롯해 드라마 ‘자체발광 오피스’ 등 공감을 주제로 한 콘텐츠들이 연일 쏟아져 나온다. 하지만 정작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다수다. 그런데 여기엔 공감 능력 부재의 문제만 있을까? 사람들은 진짜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데에도 어려움을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근영, '자장가'. 캔버스에 오일, 334 x 242mm. 2016.

근영 작가는 공감이라는 주제에 관심을 갖고 그림을 그려 왔다. 요즘은 특히 소통이 활발한 시대라고들 한다. SNS를 타고 모르는 사람, 혹은 지구 반대편 저 먼 나라에 사는 사람과도 대화를 한다. 핸드폰으로 SNS에 글을 올리면 사람들이 거의 동 시간으로 ‘좋아요’를 누른다. 그런데 이것이 과연 진정한 소통의 결과인지 작가는 궁금했다.


“저는 작품을 매개체로, 사람들과 내면 이야기를 나누는 작업에 관심이 많았어요. 이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낼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공감’이라는 단어에 집중했죠. 상대방의 이야기를 제대로 들을 때 비로소 공감이라는 게 이뤄질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이 공감이라는 것이 SNS상 무수히 이뤄지는 ‘좋아요’ 숫자로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었어요. SNS로는 굉장히 활발히 활동하지만 여전히 외롭고 공허함을 느끼는 현대인이 많아요. 진정한 공감이 아닌, 표면적이고 형식적인 공감이 이뤄지기 때문이죠. 그리고 저는 거기에 진짜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들의 모습을 봤어요.”


근영, '여행'. 캔버스에 오일, 318 x 409mm. 2016.

작가 또한 그랬다. 이야기를 하면 혹여나 상대방이 듣고 싶지 않아 할까봐, 자신의 약점이 될까봐 걱정이 될 때가 많았다. 그래서 자신의 이야기 중 남우세스럽지 않은 부분만 드러냈고, 그러다보니 진짜 자신이 느끼는 감정은 무의식적으로 깊은 내면에 치워두는 현상이 나타났다. 작가가 사람들과 그림으로 공감하고 싶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자신의 이야기에 공감해 주는 사람이 없다고 느낄 때 매우 쓸쓸했고 적막함을 느꼈다.


“초창기 작업에서는 주로 제 이야기를 했어요. ‘불면증’에서는 걱정 때문에 실제 잠을 잘 이루지 못했던 제 모습을 담았죠. 제가 무엇을 해도 아무도 이해 못해줄 것이라는 생각에 집에 1년 반 정도 틀어박혔던 시절이 있었어요. 그때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죠. 본래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지만, 주위의 이야기에 휩쓸려 그림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을 했었어요. 그러다 내면의 갈등을 느꼈고 아무와도 소통하지 않은 채 스스로를 가뒀죠. 그런데 그림으로 제 이야기를 조금씩 꺼내면서 해소의 감정을 느꼈어요. 저 자신을 조금 드러낼 줄 알게 된 거죠. 그렇게 제 이야기를 마주하다보니, 다른 사람들은 힘들 때 어떻게 할까, 무엇으로 이야기를 할까, 또 어떤 이야기에 공감을 할까 궁금했죠. 제가 이번엔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공감을 해주고 싶었어요.”


노래 가사처럼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그림


근영, '비행'. 캔버스에 오일, 318 x 409mm. 2016.

사람들은 힘들 때 흔히 노래를 듣는다. 이별을 하면 이별을 주제로 한 가사에 공감하고, 마음이 들뜰 땐 신나는 노래를 듣는다. 작가는 자신의 그림이 공감을 주는 노래 가사와 같이, 보는 이로 하여금 “나도 이런 감정을 느낄 때가 있지” 하며 쉽게 다가설 수 있기를 바랐다. 공감을 생각하며 시작한 작품 중 ‘날개’에도 이 바람을 담았다.


‘불면증’ ‘구름섬’ ‘자장가’ 등에서는 잠 못 이루는 인물의 모습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데 충실했다. 그런데 ‘날개’에서는 자신의 경험을 예전만큼 직설적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그림엔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마치 어디론가 날아갈 듯 구름 위에 살포시 두 발을 얹은 누군가의 모습이 포착된다. 그리고 원하는 곳으로 데려가 준다는 동화 속 ‘파랑새’의 모습도 보인다. 화면을 보고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상상해볼 수 있고, 여기서 수많은 감정이 탄생된다.


근영, '날개'. 캔버스에 오일, 530 x 409mm. 2016.

“사람들은 힘들 때 어디로 떠나고 싶다고들 흔히 생각하잖아요? 그런 식으로 간단하게 접근하고 감정을 풀어낼 수 있도록 화면을 구성했어요. 제 경험을 직설적으로 이야기해주는 것보다는 동화 같은 화면 구성 속 시나리오를 담는 거죠. ‘제 경험은 이랬으니까 들어주세요’가 아니라 ‘나는 이런 감정을 느꼈을 때 이랬는데, 당신은 어땠어요?’라고 질문을 던져주고 싶었어요.”


‘그 모든 진짜 같던 거짓말’ 또한 동화 같은 구성을 취했다. 꽃과 음식이 오른 테이블 위에 거짓말을 하면 코가 길어진다는 피노키오도 자리를 잡고 있다. 피노키오는 환하게 웃고 있다. 하지만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알 수 없다. 이 부분은 상상의 영역이다. 이렇게 동화에서 본 것 같은 익숙한 풍경, 또 실제로도 존재할 법한 일상적인 풍경이 작가가 그리는 화면의 시작이다. 그래서 이미지를 처음 보더라도 낯설지 않고 친근한 느낌이다. 원색적인 화려함보다는 파스텔 톤의 아련한 색감은 더욱 분위기를 살린다. 편안함을 느끼게도 해주는 색 구성이다.


근영, '패싱 샤워'. 캔버스에 오일, 455 x 606mm. 2016.

“저는 어려운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게 아니에요. 사회 속 인간관계에 실망했을 때 ‘그 모든 진짜 같던 거짓말’을 그렸죠. 이건 꼭 저만이 경험한 감정이 아니에요. 누구나 삶을 살아가면서 상처를 받고 갈등을 겪죠. 저는 제 감정과 현대인의 감정 사이의 교집합을 찾아서 그 감정으로 장면을 만들어요. 그런데 여기에서 어쭙잖은, 표면적인 공감을 하고 싶지 않았어요. 무조건 ‘괜찮을 거다’ 또는 ‘그것보다 힘든 일이 세상에 더 많다’가 아니라, ‘그랬구나. 나는 이랬어. 너는 어땠는지 네 이야기를 더 들려줄래?’ 식으로 이야기를 끊지 않고 계속 이어가고 싶은 거예요.”


또 작가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공감을 강요하지 않는 것이다. 걱정을 말해보라면서, 자신의 경험을 앞세워 조언을 하는 경우가 있다. 이것 또한 문제의 실마리를 풀기 위한 방법 중 하나겠지만, 그렇다 보면 어느새 상대방의 이야기를 자신의 이야기로 덮고 만다.


근영, '샐베이션(Salvation)'. 캔버스에 오일, 727 x 909mm. 2017.

“공감 부재의 시대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요.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는 게 쉽지도 않을 뿐더러, 만약 이야기를 꺼낸다 하더라도 자신이 너무 힘들어서 같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 상대방의 이야기는 잘 듣지 못하는 거죠.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에게는 공감과 위로가 필요해요. 쓰러지지 않기 위해서죠. 공감이 지닌 힘은 엄청나요. 이 사회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시켜주는 힘을 부여하기도 하고, 개개인의 공감이 모여서 사회에 큰 영향을 끼치기도 해요. 지난해 밤을 늘 밝혔던 촛불처럼요.”


작가의 이런 마음이 가득 담긴 것이 근작 ‘샐베이션(Salvation)’이다. 처음엔 어두운 감정에서 시작했다. 재능에 대한 고민과 혼란스러운 주변 상황으로 작가 또한 흔들렸다. 하지만 그림을 계속 그리면서 생각을 꾸준히 했다. 그 과정 속에 감정도 점차 긍정적으로 바뀌었다. 폭풍우 치는 바다 위에 뜬 배가 처음에 불안한 모습이었다면, 나중엔 샹들리에를 달고 가면서 재미있는 요소도 보여준다. 굴곡진 작가의 마음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근영, '그 모든 진짜 같던 거짓말'. 캔버스에 오일, 651 x 500mm. 2017.

하지만 그래도 괜찮다. 감정을 드러내는 데 솔직하고, 그 힘으로 함께 공감의 힘을 만들어가고자 하는 작가의 솔직한 바람이 투영됐다. 그래서 혼자 있는 걸 즐겼던 작가는 요새 많은 사람들과 만나 대화하고, 또 책도 많이 읽으면서 세상의 더 많은 이야기를 듣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저는 약간의 결벽증도 있고, 찌질한 겁쟁이예요. 예전에 숨을 때는 이런 이야기를 하지 못했죠. 창피할 수도 있는 이야기니까요. 자신의 찌질한 점을 남들에게 드러내고 싶지 않은 마음을 정말 잘 이해해요. 하지만 제 그림 앞에서만큼은 자신의 찌질함을 꼭 입 밖으로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더 이상 숨기지 않고 마음껏 느끼고 해소가 되기를 바라요.”


근영 작가.(사진=작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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