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정의 요즘 미술 읽기 (40) 미술 밖 미술] 뮤지컬 ‘나폴레옹’·‘고흐’에서 미술을 만나다

다아트 이문정(미술평론가, 컨템포러리 미술연구소 리포에틱 소장) 기자 2017.10.23 10:20:42

(CNB저널 = 이문정(미술평론가, 컨템포러리 미술연구소 리포에틱 소장)) 우리는 시각을 통해 많은 정보를 얻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잠자리로 돌아오는 순간까지 쉼 없이 무언가를 본다. 일상의 이미지에 만족하지 않는 사람들은 보다 남다른 경험을 기대하며 특별한 공간을 찾는다. 그 중 눈의 경험을 가장 중심에 놓는다고 여겨지는 장소는 미술관이나 갤러리 같은 전시장일 것이다. 다양한 감각을 동시에 충족시키는 작품이 익숙해진 시대라 해도 미술에서 여전히 중요시되는 것은 시각적 경험이다. 그렇다면 특별한 시각적 경험을 제공받을 수 있는 곳은 미술관뿐일까? 당연히 아니다. 우리는 미술관이 아닌 곳에서도 엄청난 볼거리를 얻는다. 물론 미술 작품에서 얻을 수 있는 경험의 가치와 독자성은 그 자체로 중요하다. 그러나 때로는 미술이 아닌 장르에서 보다 특별한 시각적 결과물을 만나기도 한다.  

오늘날 영화는 단순한 오락거리로 여겨지지 않는다. 영화는 감독의 철학과 세계관, 미학적 특징 등이 녹아든 독립된 예술 작품으로 이해된다. 감독의 개성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남다른 작품성과 개성을 보여준다고 평가받는 영화들은 미학적 분석의 대상이 된 지 오래다. 한 예로 테렌스 멜릭(Terrence Malick)의 ‘트리 오브 라이프(The Tree of Life)’(2011)의 도입부는 거대한 자연 앞에 선 미미한 존재인 인간을 자각시키는 낭만주의 회화 앞에 선 것 같은 감흥을 준다. 오락성과 상업성이 중요시되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도 예외가 아니다. ‘킹스맨(Kingsman: The Secret Service, 2015)’에서 에드워드 엘가(Edward Elgar)의 위풍당당 행진곡(Pomp and Circumstance, Op. 39)에 맞추어 전 세계 유명 인사들의 머리가 폭발하는 장면은 위트와 풍자 효과를 극대화시켰다.

영화-광고에서 느끼는 미술의 향기

비단 영화만 그런 것은 아니다. ‘태양의 서커스(Cirque Du Soleil)’ 이후 아트 서커스(art circus)라 불리는 공연들이 늘어났다. 다니엘 핀지 파스카(Daniele Finzi Pasca)의 또 다른 아트 서커스인 ‘라 베리타(La Verita)’는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의 회화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되었다. 보다 스펙터클한 공연을 위해 영상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도 최근에 두드러진 모습이다. ‘뿌리 깊은 나무’, ‘신과 함께’, ‘잃어버린 얼굴’ 같은 서울예술단의 뮤지컬들은 완성도 높은 3D영상과 LED를 이용한 탁월한 무대 연출로 유명하다. 영상이나 조명 등은 주인공의 감정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데에 있어 주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에는 반 고흐 작품의 영상 이미지가 활용되는데, 극의 흐름에 맞게 영상이 변하기도 해 관객의 몰입을 돕는다. 현재 공연 막바지인 뮤지컬 ‘나폴레옹(Napoléon)’에서도 영상이 적극적으로 활용되었는데, 움직이는 지구본 영상 안에서 나폴레옹이 자신의 욕망을 확인하고 의지를 다지는 ‘최후의 성전(The Last Crusade)’은 탁월한 명장면으로 꼽힌다. 또한 나폴레옹의 대관식 장면은 (원본보다 조금 발랄한 느낌이지만) 다비드(Jacques Louis David)의 회화 ‘나폴레옹의 대관식(La Coronación de Napoleón)’(1805-1807)을 연상시킨다. 

뮤지컬 ‘나폴레옹’의 대관식 장면(위)과, 자크 루이스 다비스 작 ‘나폴레옹의 대관식’(1805~7). 뮤지컬 사진 제공 = 쇼미디어

공연장이나 극장에 가지 않아도 남다른 볼거리들을 많다. 인터넷을 조금만 검색해보면 독특하고 아름다운 광고 영상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올 여름 출시된 향수 ‘겐조 월드(Kenzo World)’의 광고는 영화 ‘존 말코비치 되기(Being John Malkovich)’(1999), ‘그녀(Her, 2014)’로 유명한 영화감독 스파이크 존즈(Spike Jonze)가 맡았다. 파격이라는 단어가 정말 잘 어울리는 이 광고는 기이하면서도 아름다운 영상을 선보여 화제가 되었으며, 칸 국제 광고제(Cannes Lyons International Festival of Creativity)에서 수상하기도 했다. 우리에게는 익숙한 구찌(Gucci)의 향수 ‘플로라 바이 구찌(Flora By Gucci)’의 광고를 제작하기도 했던 크리스 커닝햄(Chris Cunningham)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크리스 커닝햄이나 미셸 공드리(Michel Gondry)의 경우 뮤직비디오 감독으로 명성을 얻기 시작했는데, 이들의 뮤직비디오는 꽤 오래 전의 영상임에도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출퇴근 거리 풍경에서도 미술 감상을 

출퇴근길에서 만날 수 있는 남다른 볼거리로 공공 조각을 떠올리기 이전에 건축을 떠올려 보자. 대부분의 사람들이 대수롭지 않게 지나치지만 건축도 창조다. 건물주의 요구, 자연 조건, 사회적이고 역사적 맥락을 고려하는 동시에 건축가 개인의 미학적 지향을 담아내야 하니 어떤 면에서는 더 고된 일이다.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Parthenon)만 중요한 예술품이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실제로 조금만 여유를 갖고 길을 걷다보면 생각보다 많은 예술을 만나게 된다. 대표적 예로 종로에 위치한, 건축가 조병수의 ‘트윈 트리 타워(2010년 완공)’를 들 수 있다. 오래된 박달나무의 밑동에서 영감을 받아 한국의 선을 표현하기 위해 각층을 여섯 개의 단층으로 나누어 유리 곡면이 섬세히 휘어지도록 한 이 건물의 원리를 알게 되면 감탄사를 연발하게 된다.  

특별히 무언가를 찾으려 하지 않아도 우리는 주변에서 많은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물건들은 실용성뿐 아니라 시각적 효과도 고려되어 만들어진 창조물이기 때문이다. 내가 걸치고 있는 옷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사실 우리 주변의 거의 모든 것은 창조적 결과물이다. “그게 뭐야?”라고 질문을 던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조금만 관점을 달리 한다면 일상의 공간에서도 남다른 시각적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진실이다.  

전시장이 아닌 곳에서 남다른 시각적 경험을 할 수 있다고 말하는 이유가 “전시를 보러 가지 마세요”를 위한 게 아님을 다 잘 알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미술이나 예술을 즐기고 싶지만 시간이 없거나 여유가 없어서 가지 못한다고 말한다. 일상이 무미건조하고 힘들다는 생각이 들 때도 많다. 그러나 미술(예술)은 이미 오래 전부터 우리의 일상에 깊이 들어와 있었다. 반드시 특별한 곳에서 특별한 것을 봐야만 나의 미적 수준이 높아지고 감상의 능력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그 완성도의 차이는 있으나 우리가 출퇴근하면서 만나는 건물들, 정거장들, 자동차, 카페와 식당의 식기들 등등은 누군가 디자인하고 창조한 것이다. 그 하나하나에 숨겨진 특징들을 관찰하고, 때로는 비판하기도 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내면 조금은 예술적인 하루를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정리 = 최영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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