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리뷰 - 손유선] 부드러운 선·색과 딱딱한 상형이 충돌하며 대립성 드러내

다아트 최영태 기자 기자 2017.11.10 11:38:06

‘구름’, 72.5 x 72.5cm, oil on canvas. 2017

‘한없이 부드러운 선과 색의 유희와, 그 위를 부분적으로 덮는 검고 딱딱한 상형문자’를 특징으로 하는 손유선 작가가 11월 7~13일 서울 강동아트센터에서 개인전 ‘레드 트라이앵글(Red Triangle)’을 열었다. 

이번 전시에서도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현란하게 흐드러지는 꽃의 색과 선이, 느닷없이 검정색 상형문자와도 같은 독특한 도형과 만나는 작품들이 주로 전시됐다. 전시 소개서는 “나는 꿈틀거리며 변화하는 욕망과 가둠을 꽃과 기호로 표현하는 작품을 해왔다. 나의 작품이 피그말리온의 조각과 같이 생명을 얻어 살아나기를 소망한다. 그래서 메아리의 끝자락처럼 그림에서 울려 퍼져 나온 이미지 조각을 제작했다. 부디 살아나서 활활 타오르기를”이라고 밝혔다.    

‘시라소니’, 90 x 100cm, 종이 위에 초크, 2017

그녀가 관심을 가져온 멸종동물 중 하나인 시라소니에 대한 부드러운 필치의 스케치 위에 상형문자가 겹치는 작품 역시 출품됐고, 색과 선의 향연인 꽃 그림이 각 면을 이루는 이른바 ‘조각 그림’도 선을 보였다. 시라소니의 모습이 연약한 종이에 그려진 뒤 세 조각으로 찢겨졌다가 다시 붙여진 것에 대해 작가는 “시라소니의 멸종 위기를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꽃 그림 위에다 기호를 얹어놓은 의미 이번 전시 ‘레드와 트라이앵글’에 대해 손 작가는 W. J. T. 미첼의 책 ‘그림은 무엇을 원하는가’의 3장에 나오는 욕망의 이중성에 대한 다음 문구들을 힌트로 제시했다. 

욕망을 [중략] 풀기와 묶기, 경계짓는,과 경계를 튀어나가는 선(98쪽)
블레이크는 구불구불한 선을 인간적 형태를 한 충족된 욕망의 윤곽과 연결시킨다. 최초의 그림은 [중략] 땅과 피의 붉은 빛 [중략] 나방이 불꽃에 끌리듯(95쪽)
피그말리온의 조각상의 이미지와 욕망의 순환적 관계, 큐피트의 화살의 욕망과 상처내기(91쪽)

‘욕망을 묶고 푸는’에 그녀 그림의 키워드가 있음을 알게 하는 암시였다. 

올해 내놓은 작가의 석사학위 논문에도 유사한 힌트가 나온다. “헤쳐져서 번져나가는 모호한 이미지와 묶어서 가두고 고정시키는 기호 이미지와의 중첩을 시도했다. 이것은 상반된 이미지로 꽃 이면의 대립적 성질을 나타내려는 의도이다. [중략] 위와 같은 경과로 그려진 추상 이미지가 명확한 의미를 전달하기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그림을 그리고자 하는 본인은 이러한 이미지가 지닌 감각적이고 직관적인 능력의 발견을 예술적 과제로 남기고자 한다”고 밝힌 바 있다. 

겹치는 그림으로 사물의 대립적 성질을 드러내

이 설명 그대로 사물에는 한 가지 성질만이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이 볼 때 꽃은 마치 “나의 색과 선, 그리고 향기를 당신들이 즐기길 바래”라고 말하는 것 같지만, 즉 인간의 시각적 만족을 위해 피어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꽃 입장에서 볼 때는 꽃을 통해 벌과 나비를 유인하고 이들의 도움으로 암술과 수술이 만나 교접을 하는, 즉 인간의 성기와도 같은 기관이다. 인간은 성기를 가장 깊숙하고 잘 안 보이는 곳에 숨기지만 꽃은 가장 잘 드러나는 곳에 화려하게 드러낸다는 차이가 있다. 

‘꽃 시리즈’, 40 x 40cm, oil on canvas, 2017


그저 아름답고 청초하기만 한 듯한 꽃이, 사실은 탐욕적-활동적으로 성행위를 하는 장소이기도 하다는 데 꽃의 ‘대립적 성질’이 있는 듯도 싶다. 

실제의 꽃보다도 더욱 흐드러지고 현란하게 물감과 선으로 재탄생한 손 작가의 꽃 그림 위에는 부적이라도 드리운 듯 독특한 모양의, 그 뜻을 알 수 없는 상형문자 같은 도형이 드리워진다. 

상형문자라고 하면 대표적으로 이집트 문자와 한자가 있다. 원래 이집트에는 일반대중이 사용하는 쉬운 문자도 있었지만 파라오와 관료층은 일반인이 습득하기 힘든 상형문자를 일부러 유지했다고 한다. 일반인들은 알 필요 없는, 아니 알아서는 안 되는 지배층만의 정보를 그 상형문자에 담아 자기들끼리만 공유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가라타니 고진 ‘세계사의 구조’ 452쪽) 

‘구름에코’, 가로-세로 30cm 높이 27cm, 2017


형상이 아니라 소리만을 표시하는 표음문자(영어 알파벳이나 한글 같은)는 쉽고 누구나 쓸 수 있어서 대중적이다. 이집트 문명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지만, 독자적인 도시국가-직접민주주의를 성취한 그리스에서 표음문자가 채용돼 발달한 것은 고대 그리스에 관료기구가 발달하지 않았고, 경제를 관료가 아니라 시장경제가 맡아서 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가라타니 고진 위의 책 452쪽) 
 
이처럼 상형문자는 귀족적이다. 동시에 상형문자는 영원하다. 중국의 저명한 저술가 이중톈은 그 특징을 이렇게 설명했다. 

“상형문자가 표음문자보다 우월한 점은 가장 원시적인 정보를 보존할 수 있다는 데 있다. 더욱이 문자 변천에 대한 고찰을 통해 우리는 역사의 궤적까지 추적할 수 있다”(‘이중톈 중국사 2 - 국가’ 179쪽)

한자의 帝(임금 제)는 땔나무와 풀 등으로 엮어 만든 신의 형상을 표현한 상형문자이고, 天(하늘 천)은 원래 사람이 서 있는 모습을 형상한 상형문자인 큰 대(大) 자 꼭대기에 의도적으로 사람의 머리를 그려 놓은 형상이라는 설명(신동준 저 ‘열국지 교양강의’에서) 등에서 ‘사람 머리 위의 하늘’ 등의 뜻이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시라소니’, 91 x 91cm, oil on canvas, 2017


이러한 특징을 갖는 상형문자 식의 각진 형태(심볼)를, 부드러운 그림 위에 올려놨기에 손유선 작가의 그림을 보는 사람들은 그림의 의미와 심볼의 의미를 생각하는 과제를 떠안게 된다. 그림이 전하는 의미를 간파하는 ‘감각적이고 직관적인 능력’은 관람자의 몫이 되고, 작가와 관람객은 그림을 통한 대화를 나눌 수밖에 없다.   

손 작가의 이런 특징은 ‘독창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잘 그려놓은 그림 위에 검정색 각진 상형문자 식 형태를 얹는다는 것은 아래 그림에 대한 테러로 해석될 수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그녀는 “80이 넘어서도 산에 올라가 빨간 천을 휘날리고, 강물에 물감 푸는 퍼포먼스로 자신만의 미술을 표현하는 이승태 작가를 강연에서 만나고 틀에 매이지 않는 독창성에 눈을 떴다”고 인터뷰에서 밝혔다. 

“몸동작에 의한 자유로운 붓질을 개척”

이미지 과잉 시대에 손 작가의 그림에 주목하게 되는 데는 이러한 독창성이 있다. ‘남들이 하지 않는 방식으로 그림을 그린 독창성’을 얘기하면, 현시대에 첫손 꼽히는 역대 최고의 작가라 할 수 있는 빈센트 반 고흐의 경우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고흐는 ‘무학의 천재’였고, 그의 작품 ‘감자 먹는 사람들’(현재는 전 세계 최고가의 명작 중 하나)을 보고 세잔은 “미치광이 그림”이라며 비웃었다고 한다(박홍규 ‘빈센트가 사랑한 밀레’ 142쪽) 

손유선 작가. (사진 = 작가 제공)

고흐의 ‘무학의 통찰’은 그의 편지에서 잘 드러난다. 그는 동생 테오에게 보낸 1882년 1월의 편지에서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데 그림 그리는 법을 어떻게 배울 수 있겠니?”라고 말했지만, 같은 해 9월 또는 10월로 추정되는, 즉 8~9개월 뒤에 쓴 편지에서는 “혼자서 배우면 비록 시간은 걸리지만 확실히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지”라고 말해 스스로 자기만의 화풍을 확실하게 터득해나갔음을 보여준다. 고흐는 정규 학교 교육을 겨우 4년 받은, 즉 정통으로 미술 아카데미를 다니면서 그림을 배우지 않은 사람이었다(박홍규 ‘빈센트가 사랑한 밀레’에서 재인용). 

손 작가는 “꽃의 불확정성을 표현하기 위한 그리기 방법을 모색해 보았다. 그 방법으로 현장에서 우연발생적인 효과를 찾을 수 있는 몸동작에 의한 자유로운 붓질을 택하였다”고 석사논문에서 밝혔다. 단순히 손목 끝으로 붓을 놀리는 게 아니라 온몸의 몸동작으로 자유로운 붓질 방법을 개척했다는 것이며, 이에 대해 작가는 “움직이는 모습을 표현하고 싶어서 사물의 피부를 깨뜨리고자 한 실험들”이라고 설명했다.

미대를 졸업했지만 미술을 잊고 지내다가 40대 중반이 지나서야 새롭게 자신의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그의 독특한 화풍이 앞으로 어떤 평가를 받을지, 어떤 전개 과정을 밟아나갈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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