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 작가 – 사석원] 홀연 사라져 더 아름다운 무지개 같은 청춘을 그리며

가나아트센터, ‘희망낙서: 청춘에게 묻다’전

다아트 김금영 기자 2018.05.15 17:01:01

사석원 작가.(사진=김금영 기자)

(CNB저널 = 김금영 기자) 청춘을 주제로 한 사석원 작가의 개인전 ‘희망낙서: 청춘에게 묻다’가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5월 18일~6월 10일 열린다. 이번 전시는 2015년 개인전 이후 3년 만에 열리는 작가의 전시다. 이전 작업에서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펼쳤다면 이번 전시에 꺼내놓은 이야기는 바로 청춘이다.

 

작가는 최근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계기를 맞았다. 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한 지 어느덧 5년. 영원히 소년 같을 줄만 알았던 아버지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모습은 충격이었다. 그리고 궁금해졌다. 현재라는 시간이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는지, 그리고 현재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출범(出帆)’ 연작이 설치된 전시장.(사진=가나아트)

작가는 “나이가 들면서 점점 나라는 정체성이 사라지고 소멸돼가는 느낌을 받았다”며 “다시금 나의 삶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원동력이 필요했다”고 털어놓았다. 이때 작가의 머리에 떠오른 가장 힘이 넘치고 활발했던 시절, 즉 청춘이다. 현재를 돌아보기 위해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던 시절을 되새기는 시간을 가졌다.

 

누구에게나 어른이 되기 위해 거치는 중간 과정을 작가는 청춘의 시기로 바라봤다. 그리고 생각했다. 자신의 청춘은 어떠했는지. 그래서 전시엔 자전적인 느낌이 있지만, 꼭 작가만의 이야기도 아니다. 누구나 겪는 게 바로 청춘이기에 작가는 자신과 더불어 청춘을 그리워하는, 또는 청춘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위로를 건넨다.

 

‘출범(出帆)’ 연작 중 ‘꽃’ 작품 이미지. 거친 항해에도 다른 동물들을 살피는 고릴라의 모습이 눈길을 끈다.(사진=김금영 기자)

청춘에 대한 이야기는 전시에서 크게 3가지 파트로 나눠진다. 첫 번째는 ‘출범(出帆)’이다. ‘출범’ 연작은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다뤘다. 청춘의 시절이 지나고 찾아오는 어른이 되는 시기, 그리고 어른은 아버지-어머니, 즉 가장의 이미지를 가졌다는 게 작가의 설명이다. 청춘을 다시금 돌아보게 한 아버지를 생각한 작가의 마음이 엿보이기도 하는 구간이다. 이 가장의 이미지가 화면에서 사람이 아닌 고릴라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기존 작품에 등장하지 않았던 동물이다.

 

작가는 “평소 동물원을 자주 간다. 그중 고릴라가 눈에 들어왔다. 사람보다 순수한 눈빛을 가진 고릴라에게서 청춘의 순수함과 동시에 깊은 연민을 느꼈다”며 “제 화면에서 고릴라는 가장의 삶을 은유하기 위한 상징으로 등장한다”고 말했다.

 

‘희망낙서’ 연작이 설치된 전시장 모습.(사진=김금영 기자)

그림 속 고릴라는 뗏목을 타고 어딘가를 향해 나아가는 모습이다. 그리고 그 여정은 순탄치만은 않아 보인다. 바람이 불지 않아 멈춘 뗏목 위에서 하염없이 바람을 기다리기도 하고, 토끼, 양 등 여타 동물들을 마치 보호하듯 껴안고 있기도 하다. 그런가 하면 뗏목 위에서 위험해 보이는 곡예를 하기도, 다른 동물과 문어를 한가운데 두고 쟁취하려 경쟁하기도 한다.

 

항해와도 같은 삶에서 수많은 역경을 딛고 책임을 다하고자 하는 가장의 모습을 상징하는 형상들이다. 그 모습은 고달파 보이는 동시에 강인하다. 고릴라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가장의 초상이자 두 자녀와 아내를 둔 작가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이렇듯 ‘출범’ 연작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른 채 주어진 삶을 살아가는 인간의 숙명을 그리며 ‘어떻게 살 것인가’ 질문을 던진다.

 

현재를 살기 위해 청춘을 돌아보는 여정

되새기고 지우고 다시 그리며 희망을 바라보다

 

왕중왕-호랑이’(왼쪽)와 ‘왕중왕-사자’ 작품은 강한 동물의 이미지를 통해 힘과 권력에 대한 청춘의 열망을 보여준다.(사진=김금영 기자)

두 번째 파트 ‘희망낙서’ 연작은 힘을 갈망하는 청춘의 욕망이 드러나는 역동적인 작품이다. 호랑이, 부엉이, 소, 당나귀, 코뿔소 등 다양한 동물이 등장해 청춘들의 열망과 번민을 표현한다.

 

작가는 “청춘을 돌이켜보면 실망과 좌절도 있고 힘들었다. 내게는 나를 지킬만한 무기도 재산도 없었으며, 존재감도 미약했다. 그저 몸뚱이 하나만 있었다. 그래서 힘과 권력에 대한 동경이 컸다”고 말했다. 그림 속 부엉이, 호랑이, 사자는 ‘왕 중의 왕’이라 불리는 동물들이다. 작가는 힘에 대한 욕망과 동경이 넘쳤던 청춘의 마음을 영웅적인 동물들로 대변한다. 소도 보인다. 지칠 줄 모르는 강인한 생명력이 눈길을 끈다.

 

부엉이와 코뿔소 등 다양한 동물이 그림에 등장한다.(사진=김금영 기자)

그리고 이 ‘희망낙서’ 연작에서 이전 작업들과 다른 양식, 즉 지우기 기법이 두드러진다. 이번 전시에 새롭게 등장한 작업 방식이다. 그림을 그린 뒤 두텁게 물감이 발라진 캔버스 위를 커다란 나무로 밀어냈다. 그래서 물감이 고르게 발라져 있지 않고, 옆으로 밀린 흔적이 고스란히 남았다. 그런데 이렇게 밀어냄의 과정을 통해 애초의 그림과는 또 다른 분위기의 그림이 탄생한다.

 

작가는 “힘들었던 마음을 지우고 위에 희망을 덧칠하고 싶었다. 나무로 화면을 지워내는 과정에서 채도와 명도가 올라가 화면에 더 밝은 느낌이 들었다. 다시 시작하기 위해 지우는 것, 그것이 희망낙서”라고 말했다.

 

동물들의 강인한 생명력이 돋보이는 ‘희망낙서’ 연작.(사진=김금영 기자)

마지막으로 ‘신세계’ 연작이 있다. ‘희망낙서’ 연작이 힘에 대한 청춘의 욕망을 그렸다면 ‘신세계’ 연작은 성적 욕망을 솔직하게 담았다. 기존 작업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여성의 누드가 강렬한 원색과 거친 붓 자국의 조합으로 화면에 담겼다. 작가는 “청춘 시절 누구나 가졌을 법한 욕망을 환기시킨 작업이다. 이런 욕망은 가공되지 않은 원초적인 힘, 야생성과도 직결된다. 이를 강조하기 위해 당나귀, 수탉, 소, 비단잉어를 여성의 누드와 함께 그려 넣었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다시금 만난 작가의 청춘 시절엔 그렇게 심한 고난과 역경, 극적이고 드라마틱한 사연은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청춘은 그 자체로 찬란하게 빛났고, 열정적이었으며 또 아팠다. 대부분 그렇듯이 작가도 이렇게 청춘을 겪고 떠나보냈다.

 

‘신세계’ 연작이 설치된 전시장.(사진=김금영 기자)

작가는 “예전엔 하나라도 더 잡아서 그림에 넣으려 했다. 그런데 점점 나이가 들어가면서 잡고 있는 것을 덜어내는 일에 집중하는 것 같다. 자연스러움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나이”라며 “자연스럽게 흘러간 청춘을 되새기는 작업이 내게 새로운 원동력이 되며 인생의 의미를 고찰하는 계기가 됐다. 내 그림이 청춘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에게 힘이 되고, 현재 청춘의 시기를 겪는 이들에겐 꼰대같은 그림이 아닌 위로를 전달하는 그림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무지개는 오래 볼 수 없어 더욱 아름답다. 색동 향연은 끝나고 덩그러니 남은 허공. 더 이상 가슴에 불을 쑤시지 않는다. 수평선에 태양이 눕고 내 청춘은 당나귀 타고 총총히 사라졌다. 스스로 물었다. 당신은 어른인가? 당신의 삶은 어떠한가?”

 

사석원의 작가노트 중 일부다. 오래 볼 수 없지만 그래서 더욱 아름다운 것, 총총히 사라져 아쉽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또 돌이키고 싶지도 않은 것. 사석원이 정의 내린 청춘(靑春)은 이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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