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 전시] 젊은 작가 6인이 되쓴 한국 근대 100년사

일민미술관 기획전 ‘불멸사랑’

다아트 김금영 기자 2019.03.05 09:18:26

프랑스 작가 파비앙 베르쉐르의 작품이 설치된 전시장 입구.(사진=김금영 기자)

(CNB저널 = 김금영 기자) 일민미술관이 ‘불멸사랑’을 외친다. 전시명만 보면 로맨틱한 사랑 이야기가 펼쳐질 것 같지만 전시가 접근하는 건 불멸의 가치다. 강이연, 권하윤, 서용선, 이우성, 조은지, 파비앙 베르쉐르 등 작가 6인이 다양한 작업을 통해 역사, 신화, 종교, 사랑과 같은 불멸의 가치를 동시대성 안에서 새롭게 해석하고 구성한다.

조주현 일민미술관 학예실장은 “인간의 불멸을 향한 욕망은 개개인의 삶을 추동하며 변화와 진보를 거듭해 역사를 이뤄 왔다. 특히 올해는 3.1운동 100주년이자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해로 한국 근대 100년의 역사를 새롭게 바라볼 시점에 이르렀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문화적 환경에서 역사라는 거대 담론은 일상적 삶과 동떨어져 있기에 공감을 불러일으키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번 전시를 위해 제주도와 부산에서 2주 동안 시간을 보내며 한국의 신화와 전통문화, 역사를 조사한 파비앙 베르쉐르는 전시장에 신화적 모티프를 품은 화면을 구현하며, 이를 통해 인간의 존재와 역사를 탐구한다.(사진=김금영 기자)

이 가운데 전시가 선택한 방법은 젊은 작가들과의 역사 쓰기다. 조 학예실장은 “밀레니얼 세대 젊은이들은 빅데이터와 인터넷이 익숙한 환경에서 자신들이 경험하지 못한 시대를 새로운 이미지로 발굴해낸다. 승자의 입장에서 써왔던 역사 쓰기에서 탈피해 은폐되고 감춰졌던 보통사람들의 일상적 삶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새로운 역사 쓰기가 가능해진 것”이라며 “이번 전시에서 아티스트 6인은 서로 다른 문화, 종교, 언어 사이의 조우가 심화된 오늘날 역사적, 민족적, 문화적 특징들이 어떻게 되쓰고 있는지 탐구한다”고 밝혔다.

전시장 1층엔 프랑스 작가 파비앙 베르쉐르의 작품이 설치됐다. 만화적인 이미지와 연극적 무대로 구성된 그의 작업은 생애 초반 15년을 병원에서 머물며 두려움에 가득 찬 유년기를 보낸 한 어린아이의 눈으로 본 세계다. 어린이의 꿈속에나 존재할 만한 귀신들, 이상한 동물들 같은 하이브리드 생명체들이 살고 있는 세계는 신화적 모티프를 품고 있다. 작가는 이를 통해 인간의 존재와 역사를 탐구한다.

 

이우성은 다양한 이미지들을 전시장 벽에 일렬로 쫙 진열해놓았다.(사진=김금영 기자)

특히 이번 전시를 위해 제주도와 부산에서 2주 동안 시간을 보내며 한국의 신화와 전통문화, 역사를 조사한 작가는 한국 관객들과 함께 매일의 일상에서 신화를 구축하고자 하는 시도를 한다. ‘에브리데이 이즈 유어 버스데이(Everyday is Your Birthday)’라는 부제를 단 그의 전시는 역사를 멀고 어려운 대상으로 여기지 않고 지금 현재 우리의 삶 자체 또한 역사의 일부분임을 이야기하며 관람객에게 창조적 해석의 주체가 되기를 요청한다.

전시장 2층엔 이우성, 조은지의 공간이 마련됐다. 이우성의 화면은 마치 인스타그램 속 이미지들을 전시장 벽에 일렬로 쫙 진열해놓은 느낌이다. 그가 주목한 역사는 바로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상의 소소한 사건들이다. 광화문을 가득 채웠던 촛불집회처럼 역사의 한 페이지에 기록될 만한 사건을 그린 이미지도 있지만 이 가운데 거리의 포장마차에서 술잔을 나누는 사람들, 밤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젊은이들의 뒷모습 등 굉장히 개인적이고도 사소한 일상 또한 역사의 일부로 개입돼 있다.

 

이우성은 광화문을 가득 채웠던 촛불집회처럼 역사의 한 페이지에 기록될 만한 사건을 그리기도 했지만, 이 가운데 거리의 포장마차에서 술잔을 나누는 사람들, 밤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젊은이들의 뒷모습 등 굉장히 개인적이고도 사소한 일상 또한 역사의 일부로 개입시켜 놓았다.(사진=김금영 기자)

조은지는 전시장에서 흙을 던지는 퍼포먼스를 펼쳤다. 무언가를 던지는 저항과도 같은 행위, 그리고 근원을 상징하는 흙으로 돌아간다는 이중적인 의미를 담은 작업이다. 그가 역사를 기록하는 방법은 이처럼 정보보다는 행위 또는 신체의 풍경이다. 5층엔 그의 싱글 채널 영상 작업 ‘검정 우산을 쓴 여인의 초상’이 설치됐는데, 폭력의 역사를 발언하는 인물의 모습을 담았다.

 

특히 발언의 내용이 아닌, 발언을 하고 있는 인물의 제스처, 그리고 그가 입은 옷에 주목했다는 점이 독특하다. “언어로 발화되는 기억보다 신체의 움직임으로 새겨진 기억을 더 신뢰한다”는 작가는 자의적으로 해석되는 역사의 정보보다 그 역사를 본능적으로 기억하는 신체에 주목하며 나름대로 역사의 기록을 이어간다.

 

조은지의 전시 공간. 그는 음악, 공연, 대화, 강연을 통해 예술이 행하는 ‘시간의 수행행위’에 집중하는 작업을 선보인다.(사진=김금영 기자)

 

인간은 역사를 기억하는 주체로 제대로 존재하는가?

 

“언어로 발화되는 기억보다 신체의 움직임으로 새겨진 기억을 더 신뢰한다”는 조은지는 자의적으로 해석되는 역사의 정보보다 그 역사를 본능적으로 기억하는 신체에 주목하며 나름대로 역사의 기록을 이어가는 영상 작업 또한 보여준다.(사진=김금영 기자)

5층에서는 강이연, 권하윤의 작업도 볼 수 있다. 전시장 벽 전면에 쏟아지는 강이연의 영상은 그 한가운데에 섰을 때 마치 이 영상 속에 인간이 빨려 들어가는 것 같은 강한 흡인력을 보여준다.

 

그는 디지털 시대 삶을 편안하게 해준 컴퓨터 코드가 우리가 직면한 복잡하고 까다로운 문제들을 추상화해 버리고, 이로 인해 진정으로 중요한 가치에 대한 질문을 잊고 인식이 마비되는 현 시대의 현상을 읽는다. 이 가운데 ‘컨티넘(Continuum)’ 작업은 더 이상 시간성으로만 해석될 수 없는, 끊임없이 시공간을 확장하며 나아가는 현시대 역사의 흐름 안에서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시스템에 매몰되지 않는 우리 자신이라고 강조한다.

 

전시장 벽 전면에 쏟아지는 강이연의 영상은 그 한가운데에 섰을 때 마치 이 영상 속에 인간이 빨려 들어가는 것 같은 강한 흡인력을 보여준다.(사진=김금영 기자)

권하윤 또한 인간이 역사를 기억하는 주체로서의 역할을 얼마나 객관적으로 행할 수 있는지 의문을 던진다. VR을 이용한 ‘489년’과 이번 전시에서 처음으로 공개하는 ‘새여인’ 스크리닝 버전 모두 타인과의 만남을 통해 이뤄진 작업이다. ‘489년’은 실제로 DMZ에서 근무했던 군인의 이야기, ‘새여인’ 또한 타인이 인상적으로 기억하는 장소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만든 화면이다.

 

타인이 그 장소에 직접 가본 것은 엄연한 사실이지만 그 사실이 타인의 주관에 의해 이야기로 전달되고, 이를 들은 작가 또한 자의적 해석과 상상을 거친다. 그 결과로 탄생된 화면은 실제 존재하는 그곳과 전혀 다른 존재가 될 가능성이 있다. 작가는 이를 통해 각자가 기억을 더듬어 이야기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역사, 사실이 얼마나 왜곡될 수 있는지 밝힌다.

 

권하윤의 ‘새여인’ 스크리닝 버전 작업. 타인의 이야기를 듣고 이를 바탕으로 상상한 공간을 보여주는 과정을 통해 역사가 어떻게 주관적 해석으로 왜곡될 수 있는지 꼬집는다.(사진=김금영 기자)

전시장 5층은 신문박물관을 활용한 전시 형태다. 한국 근대 100년의 역사적 사건들을 기록하고 한국 신문 130년의 역사를 조망할 수 있도록 구성된 신문박물관의 장소성에 권하윤, 서용선 등 동시대 예술가들의 작업이 실험적으로 개입됐다. 아카이브 사이에 숨은그림찾기 같이 작가들의 작업이 설치돼 있다.

특히 역사, 전쟁, 신화, 종교 등의 주제들을 인간 본질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을 통해 탐구해 온 서용선의 대형회화, 조각, 드로잉 등 70여 점에 달하는 작업들을 볼 수 있다. 박물관 유물장, 20세기 초 사용됐던 인쇄 윤전기들, 오래된 기자 책상 사이에 예기치 않게 그의 자화상, 전쟁을 모티브로 한 드로잉, 민초들을 형상화한 조각 작품들이 설치됐다. 이 배치는 기존의 선형적으로 구성된 박물관 콘텐츠들을 유기적으로 재맥락화한다.

 

한국 근대 100년의 역사적 사건들을 기록하고 한국 신문 130년의 역사를 조망할 수 있도록 구성된 신문박물관에 권하윤, 서용선 등 동시대 예술가들의 작업이 중간 중간 설치됐다.(사진=김금영 기자)

조 학예실장은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고 싶어 하며 주변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역사의 별이 되기를 바라는 욕망을 가졌다. 오늘날 인간의 존재는 사후에도 데이터로 영생이 가능하다. 그런 세계에서 유구한 시간을 존속해 온 가치들은 어떻게 기록되며 역사 또한 어떻게 기억될까?”라고 질문을 던졌다.

 

그는 이어 “이번 전시는 동시대성의 조건 아래 역사가 어떻게 새로운 양식화를 이루는지 살피고, 계몽주의 전통의 근대적 역사 쓰기가 지녔던 직선적, 선형적 시간관이 오늘날 미디어 환경에서 어떻게 순환적 시간관을 갖게 되는지 살핀다”고 밝혔다. 전시는 일민미술관에서 5월 12일까지.

 

오래된 기자 책상 사이 서용선의 자화상이 설치돼 있다.(사진=김금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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