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 전시] 하이메 아욘 “모든 오브제는 살아 있다”

대림미술관서 국내 첫 개인전 ‘숨겨진 일곱 가지 사연’

다아트 김금영 기자 2019.05.10 13:14:06

하이메 아욘 작가.(이미지 출처/사진 제공=대림미술관)

(CNB저널 = 김금영 기자) “제 뇌는 8살 아이와 같다고 생각해요. 아이로부터 특별한 영감을 받기보다 저 자체가 아이처럼 사는 거죠. 자유로우면서도 열린 태도를 갖고 최대한 재미있게 살려고 해요.”

스페인 출신 작가 하이메 아욘은 자신의 정체성을 이렇게 소개했다. ‘재미’가 그의 삶의 이유이자 원동력으로, 재미없는 건 도저히 억지로 할 수 없었다는 그. 대림미술관에서의 국내 첫 개인전 ‘하이메 아욘, 숨겨진 일곱 가지 사연’은 이런 그의 정체성을 오롯이 담은 자리다.

 

질문에 답하고 있는 하이메 아욘 작가.(사진=김금영 기자)

작가는 디자인, 가구, 회화, 조각, 스케치, 대형 설치 작업까지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며 작업 세계를 펼쳐 왔다. 프랑스의 크리스털 브랜드 바카라, 베네치아의 유리 공예 전문 브랜드 나손 모레티를 비롯해 덴마크의 프리츠 한센, 스페인의 BD 바르셀로나 디자인, 이탈리아의 마지스 등 다양한 브랜드와 가구, 디자인 협업을 선보이는 동시에 작가로서 런던 데이비드 길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갖기도 했다.

이처럼 그의 손길을 거쳐 탄생한 작업들의 장르는 다양하지만 하나의 일관된 공통점을 가졌다. 바로 작가의 상상력이 깃든 저마다의 사연을 갖고 있다는 것. 이번 전시는 이 오브제들이 관람객에게 자신들의 사연을 들려주는 만담과도 같다. “디자인이란 사용자의 감성을 건드리고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작업 철학이라는 작가는 작업에 임할 때 오브제를 하나의 생명체처럼 대한다고.

 

본격적인 전시에 앞서 관람객들을 맞이하는 ‘그린치킨’이 그림자와 함께 배치됐다.(사진=김금영 기자)

그는 “우리를 둘러싼 오브제들엔 영혼이 있고, 그들의 언어로 우리들에게 이야기를 건네고 있다. 유년 시절 항상 우리 곁에서 끊임없이 말을 걸어주던 상상 속 친구들처럼 말이다”라며 “하지만 어른이 돼버린 우리는 더 이상 이 이야기들을 듣지 못한 채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이 숨겨져 왔던 이야기들에 다시 귀를 기울이며 일상에 다시금 활력과 재미를 불어넣고자 하는 마음을 이번 전시에 담았다”고 전시의 중심을 이룬 뿌리를 밝혔다. 전시명이 왜 ‘숨겨진 일곱 가지 사연’으로 정해졌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오브제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으로는 그림자가 활용된다. 전시는 크게 7가지 공간으로 구성되는데, 각 공간을 대표하는 오브제 옆에 그 오브제의 그림자와 문구를 함께 배치해 놓았다. 예컨대 본 전시에 앞서 관람객을 작가의 세계로 인도하는 인트로 공간에는 ‘그린 치킨’ 설치물과 그 설치물의 그림자가 함께 보이는데 작품에 대한 설명 대신 “안녕? 나는 그린 치킨이야. 세상에 사연 없는 사람은 없는 것처럼, 우리도 만들어진 이유와 사정이 있지. 내 친구들의 이야기 한 번 들어볼래?”라며 말을 거는 듯한 문구가 배치됐다.

 

전시의 첫 공간 ‘크리스털 패션’엔 크리스털 브랜드 바카라와의 협업으로 만든 장식용 화병 세트 ‘크리스털 캔디 세트’가 설치됐다.(사진=김금영 기자)

안주휘 대림미술관 수석 큐레이터는 “각 전시 공간에 적힌 문구는 기존에 하이메 아욘이 작업하면서 써 왔던 글들의 내용 중 이번 전시와 부합되는 내용들을 고른 뒤 대림미술관과 함께 각색을 거쳐 재구성한 것”이라며 “다양한 이야기가 오브제와 살아 숨 쉰다고 믿는 작가의 마음을 이 문구들을 통해서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항상 존재하지만 발밑에 깔려 그 존재를 까먹기 일쑤인 그림자처럼 우리가 미처 보고 듣지 못했던 이면의 이야기들이 이번 전시에서는 주인공이 된다.

오브제의 그림자들에게 말 걸기

 

아프리칸도 가족의 사연을 담은 두 번째 공간 ‘모던 서커스 & 트라이브스’는 노란색감이 화사하다.(사진=김금영 기자)

본격적인 전시는 작가의 협업, 특히 재료의 물성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작업들을 먼저 볼 수 있도록 구성됐다. 전시의 첫 공간 ‘크리스털 패션’엔 크리스털 브랜드 바카라와의 협업으로 만든 장식용 화병 세트 ‘크리스털 캔디 세트’가 설치됐다.

 

다소 연약한 재료인 크리스털과 견고함이 특징인 세라믹, 전혀 다른 물성을 지닌 이 두 재료를 결합해 다양한 텍스처와 두께, 컬러를 지닌 열대 과일의 영롱함을 표현했다. 파인애플, 석류, 물방울, 골프공 등을 본 떠 만든 고유한 형태에 조각 패턴을 입힌 뒤 선명한 빛깔을 더한 결과물이다. 이 작업은 빨간 보석을 품고 있는 본본 트레져와 함께 총 25세트 리미티드 에디션으로 제작됐는데, 이 콘셉트에 맞춰 전시 공간도 빨간색으로 꾸며졌다.

 

오브제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으로는 그림자가 활용된다. 전시는 크게 7가지 공간으로 구성되는데, 각 공간을 대표하는 오브제 옆에 그 오브제의 그림자와 문구를 함께 배치해 놓았다.(사진=김금영 기자)

아프리칸도 가족의 사연을 담은 두 번째 공간 ‘모던 서커스 & 트라이브스’는 노란색감이 화사하다. 아프리카의 전통 마스크와 의복 등 강렬한 장식 미술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한 7개의 유리 화병으로 구성된 ‘아프리칸도’ 시리즈, 그리고 6점의 도금된 세라믹 화병 세트와 1개의 나무 테이블로 구성된 설치 작품 ‘몬 써큐’를 소개하는 공간이다.

‘아프리칸도’ 시리즈는 유리 공예 전문 브랜드 나손 모레티의 몰드-블로잉(대롱 끝에 묻힌 유리를 처음부터 마련해 놓은 틀 안에서 불어 모양을 잡는 기법) 기술이 더해져 완성된 것으로, 작가는 여기서도 연약한 유리와 단단한 대리석의 상반된 물성의 조화를 시도했다. 작가는 “다양한 분야의 장인과 협업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장인들의 손길 속에는 해당 분야의 역사가 담겼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미래의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는 과정에 흥미가 있다”고 협업을 꾸준히 전개하는 이유를 밝혔다.

 

‘체크메이트’는 2009년 런던 디자인 페스티벌을 위해 작가가 디자인한 대형 체스 게임 설치 작품 ‘더 토너먼트’를 소개하는 공간이다.(사진=김금영 기자)

앞선 공간의 주인공이 본본 트레져였다면 여기서는 사이다(Saidha)의 그림자가 “내 이름은 사이다(Saidha). ‘행운’이란 뜻이지. 아욘이 아프리카에 오지 않았으면 우리 가족은 없었을 거야. 너도 한 번 떠나보는 건 어때? 거기에서 가만히 기다린다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라고 말을 건넨다.

세 번째 공간 ‘체크메이트’는 2009년 런던 디자인 페스티벌을 위해 작가가 디자인한 대형 체스 게임 설치 작품 ‘더 토너먼트’를 소개하는 공간으로 흰색과 검은색이 주요 테마색이다. 작가는 세라믹 브랜드 보사의 장인들과 2m 높이의 체스 말 32점을 만들고, 각각의 말에 직접 런던을 대표하는 역사적 건물, 돔, 타워, 첨탑 등을 직접 그려 넣었다. 영국과 프랑스-스페인의 역사적 전투인 트라팔가르 해전을 모티브로 한 이 작품은 런던의 트라팔가르 광장에 설치됐을 당시 각 체스 말에 바퀴를 달아 실제로 관객들이 게임에 참여하게 함으로써 오브제가 관객과 함께 살아 숨 쉬는 현장을 만들었다.

 

런던 데이비드 길 갤러리에서 선보였던 개인전의 벽화를 리메이크한 5점의 페인팅 시리즈가 설치된 공간.(사진=김금영 기자)

네 번째 공간 ‘드림 캐처’에서는 작가의 페인팅 작업이 중심을 이룬다. 런던 데이비드 길 갤러리에서 처음으로 선보인 개인전의 벽화를 리메이크한 5점의 페인팅 시리즈를 볼 수 있다. 특히 이 작업들은 작가의 꿈의 전경을 묘사한 것들로, 현실과 가상을 넘나드는 작가의 판타지를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다섯 번째 공간 ‘캐비닛 오브 원더즈’에서는 다양한 오브제들이 “여기 좀 봐봐. 우리 목소리 들려? 캐비닛 안을 좀 들여다 봐줘. 우리 삶은 네가 내 말을 들어줄 때 가치가 있단 말이야”라고 말을 건넨다. 유선형 디자인이 돋보이는 캐비닛 안에 70여 점의 다양한 오브제와 스케치북이 함께 전시돼 해당 작품이 어떻게 탄생하게 됐는지, 그리고 어떤 이야기를 품고 있는지 상상력을 자극한다.

 

유선형 디자인이 돋보이는 캐비닛 안에 70여 점의 다양한 오브제와 스케치북이 함께 전시돼 해당 작품이 어떻게 탄생하게 됐는지, 그리고 어떤 이야기를 품고 있는지 상상력을 자극한다.(사진=김금영 기자)

가구 디자이너로서의 면모는 여섯 번째 공간 ‘퍼니처 갤럭시’에서 드러난다. 전시장 벽면을 작가의 그림이 채운 가운데 프리츠 한센, BD 바르셀로나 디자인, 마지스 등 가구 브랜드와의 협업을 통해 탄생한 가구들은 각 브랜드가 지닌 정체성을 기반으로 작가 고유의 개성과 스타일을 덧입었다. 이중 한 가구는 “양 팔을 앞으로 뻗어봐. 애정을 가득 담아서. 어때, 꼭 안아주는 것 같지? 그래서 내 이름은 캐치 체어(Catch Chair)야. 우리의 존재에는 우연은 없어! 다 이유가 있지!”라고 자신을 소개해 눈길을 끈다.

마지막 공간인 ‘아욘의 그림자 극장’은 작가가 이번 전시를 위해 처음으로 선보이는 그림자 극장이자, 전시의 집대성과도 같다. 마치 놀이공원에서 흘러나올 법한 음악이 전시장에 깔린 가운데 거대 조형물들이 설치됐다. 이 조형물들은 작가의 상상속 살아 있는 캐릭터들로, 그림자 극장을 통해 현실로 놀러왔다는 콘셉트다. 백색 메탈과 형형색색의 아크릴을 결합한 설치물들은 빛과 그림자를 통해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한 다양한 실루엣을 연출한다. 그리고 벽과 바닥에 비치는 그림자들은 “정말 자유롭고 싶다면 용기를 내서 자신을 드러내봐. 그림자면 어때? 지금 이 모습도 충분히 훌륭한데”라고 말을 건넨다.

 

하이메 아욘의 가구 디자이너로서의 면모는 여섯 번째 공간 ‘퍼니처 갤럭시’에서 드러난다. 다양한 가구 브랜드와의 협업을 통해 탄생한 가구들과 더불어 ‘캐치 체어’ 그림자의 소개 문구도 볼 수 있다.(사진=김금영 기자)

작가는 “영감의 원천은 바로 우리 주변에 있다. 어떤 사물이 있는데 그 사물이 지닌 스토리텔링이 없다면 아무리 미학적 측면에서 아름답다 하더라도 공감을 이끌어낼 수 없다. 나는 이 스토리텔링을 이끌어 내면서 동시에 오브제의 기능성과 미학적인 측면까지 극대화시키기 위해 노력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아욘의 꿈속에 오랫동안 살았어. 그리고 지금은 네 앞에 있지. 상상이 어떻게 현실이 되는 줄 아니? 바로 꿈꿨기 때문이야.” 전시장을 둘러보면서 발견한 문구다. 꿈꾸는 걸 멈추지 않은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이제 같이 상상의 나래로 떠나보자고 제안한다. 전시는 대림미술관에서 11월 17일까지.

 

‘아욘의 그림자 극장’은 작가가 이번 전시를 위해 처음으로 선보이는 그림자 극장이자, 전시의 집대성과도 같다. 마치 놀이공원에서 흘러나올 법한 음악이 전시장에 깔린 가운데 거대 조형물들이 설치됐다.(사진=김금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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