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기업] PART 1. 아모레퍼시픽미술관에 울려 퍼진 메시지 “충분하면 만족하라”

바바라 크루거 아시아 첫 개인전 현장

다아트 김금영 기자 2019.07.23 15:01:06

아모레퍼시픽미술관 로비의 거대한 8개 유리벽에 적힌 ‘Plenty should be enough’ 문구. 이 문구는 바바라 크루거의 작업에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문구로, 소비지상주의와 욕망에 대한 작가의 코멘트와도 같다.(사진=김금영 기자)

(CNB저널 = 김금영 기자) “충분하면 만족하라(Plenty should be enough).” 아모레퍼시픽미술관 로비의 거대한 8개 유리벽에 적힌 문구. 이 문구는 40여 년 동안 차용한 이미지 위에 텍스트를 병치한 고유한 시각 언어로 세상과 소통해 온 현대 미술 거장 바바라 크루거의 작업에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문구로, 소비지상주의와 욕망에 대한 작가의 코멘트와도 같다.

바바라 크루거의 아시아 첫 개인전 ‘바바라 크루거: 포에버(BARBARA KRUGER: FOREVER)’가 서울 용산 아모레퍼시픽미술관에서 12월 29일까지 열린다. 이번 전시는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이 용산에서의 신축 개관 1주년을 기념해 기획된 자리다. 전시장 입구에서 방문객을 맞이하는 이 문구엔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세상에 여러 코멘트로 관여하는 바바라 크루거의 작업 방향이 느껴진다. 특히 이 문구가 영어뿐 아니라 한글로도 적힌 점이 인상적이다.

 

로비 안쪽에는 ‘Plenty should be enough’ 텍스트의 한글 버전인 ‘충분하면 만족하라’가 설치됐다. 바바라 크루거가 처음으로 선보이는 한글 작업이기도 하다.(사진=김금영 기자)

김경란 아모레퍼시픽미술관 큐레이터는 “‘충분하면 만족하라’는 문구는 말하는 사람과 듣는 대상이 누구냐에 따라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지녔다. 이처럼 바바라 크루거는 사회의 어떤 현상에 하나의 시각만 제시하는 게 아니라 다양한 의견이 오갈 수 있는 코멘트를 던진다”며 “특히 이번 전시에서 작가가 이 문구를 한글로도 작업하고 싶다고 먼저 제안했다. 아시아에서 열리는 작가의 첫 개인전이자, 처음 공개되는 한글 설치 작품으로서의 의의가 크다”고 말했다.

총 6개의 전시장과 아카이브룸으로 구성된 전시는 작가의 40여 년 간의 작업 세계를 총망라한다. ‘충분하면 만족하라’는 문구를 지나면 미술관 로비 콘크리트 벽에 성모자상을 배경으로 ‘최신 버전의 진실(The latest version of truth)’이라는 영문 텍스트가 적힌 사진이 보인다. 여기에 ‘싸우지 마시오(Don’t battle)’ ‘신경 쓰지 마시오(Don’t bother)’ ‘믿지 마시오(Don’t believe)’ ‘사지 마시오(Don’t buy)’라는 문구가 이미지를 둘러쌌다.

 

미술관 로비 콘크리트 벽에 성모자상을 배경으로 ‘최신 버전의 진실(The latest version of truth)’이라는 영문 텍스트가 적힌 사진이 보인다.(사진=김금영 기자)

김경란 큐레이터는 “성모자상은 서양문화의 근간이 되는 기독교의 상징으로, 절대 의심할 수 없는 진리와도 같은 존재다. 하지만 작가는 여기에 오히려 ‘최신 버전의 진실’이라는 문구를 적어 넣으며 우리가 절대 의심하지 않는 것들에 대해서도 한 번 생각해볼 여지를 둔다”고 설명했다.

본격적으로 지하 전시장에 들어서기 전 설치된 이미지 또한 이런 맥락에 놓여 있다. 날카로운 오브제로 눈이 찔리기 직전에 놓인 아슬아슬한 긴장감이 넘지는 이미지. 이는 세상을 인지하는 눈이 외부의 수많은 통제 아래 놓인 모습을 상징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진정 자신의 의지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건 아닌지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날카로운 오브제로 눈이 찔리기 직전에 놓인 아슬아슬한 긴장감이 넘지는 이미지. 이는 세상을 인지하는 눈이 외부의 수많은 통제 아래 놓인 모습을 상징하는 것처럼 느껴진다.(사진=김금영 기자)

 

바라 크루거의 첫 한글 텍스트 작업의 의미는?

 

이번 전시에서 가장 규모가 큰 작업이자 전시명의 모티프가 된 ‘무제(영원히)Untitled(Forever)’. 2017년 첫 공개됐던 장소 특정적 설치 작업으로, 작가가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을 위해 특별히 재디자인한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의 소장품이자 이번 전시의 대표작이기도 하다.(사진=김금영 기자)

첫 번째 전시장에서는 이번 전시에서 가장 규모가 큰 작업이자 전시명의 모티프가 된 ‘무제(영원히)Untitled(Forever)’를 볼 수 있다. 2017년 첫 공개됐던 장소 특정적 설치 작업으로, 작가가 이번 전시를 위해 특별히 재디자인했다.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의 소장품이자, 이번 전시의 대표작이기도 하다. 거대한 방에 가득 찬 텍스트가 하나의 조형으로 기능한다. 워낙 텍스트가 거대해 이를 제대로 읽기 위해선 관람객이 오히려 방 안을 돌아다녀야 한다.

김경란 큐레이터는 “‘지난 수 세기 동안 여성은 남성의 모습을 원래보다 두 배로 확대해 비춰주는 마력을 가진 거울 같은 역할을 해 왔다는 것을 당신은 알고 있다’ ‘만약 당신이 미래의 그림을 원한다면, 인간의 얼굴을 영원히 짓밟는 군화를 상상하라’ 등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자기만의 방’과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서 인용한 텍스트들은 사회구조, 권력, 정치, 욕망의 메커니즘에 대한 작가의 통찰을 보여준다”며 “텍스트로 가득한 이 공간을 관람객은 능동적으로 걸으며 스스로 사유하고 질문하는 행위자로 거듭난다”고 말했다.

 

1960년대 후반 잡지사 디자이너로 활약하고, 1970년대 후반부터 사진을 이용한 작업을 시작하며 작업의 기본을 쌓은 작가의 초기 작업을 볼 수 있는 공간.(사진=김금영 기자)

작가의 최근 작품과 더불어 대표 작업들도 볼 수 있다. 텍스트로 눈이 부셨던 거대한 공간을 지나면 분위기가 엄숙하게 반전된다. 1960년대 후반 잡지사 디자이너로 활약하고, 1970년대 후반부터 사진을 이용한 작업을 시작하며 작업의 기본을 쌓은 작가의 초기 작업을 볼 수 있다. 사진과 텍스트를 일일이 오려 손으로 붙인 페이스트업 작품 총 16점에서 세상을 바라본 작가의 시선이 엿보인다.

예컨대 여자 석고상의 옆면을 찍은 사진엔 ‘당신의 시선이 내 뺨을 때린다(Your gaze hits the side of my face)’는 텍스트를 배치했다. 1980년대 미디어에서 남성의 시선 위주로 노출됐던 여성의 이미지에 대한 작가의 코멘트다. 하지만 이를 비판하는 건 아니다. 우리가 어떤 사회에 살아 왔고 살아가고 있는지 그대로 보여줄 뿐.

 

바바라 크루거의 또 다른 한글 작업 ‘제발 웃어 제발 울어’가 설치된 모습.(사진=김금영 기자)

특히 눈길을 끄는 작업은 거울처럼 서로 바라보며 배치된 ‘이제 좀 재미있어(Are we having fun yet)?’와 ‘제발 웃어 제발 울어’다. 자신의 감정마저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부분이 많은데 세상의 수많은 이슈에 어떻게 하나의 태도로만 반응할 수 있을까? 작가 또한 세상에 속한 자로서 이야기를 건네며 보다 능동적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도록 장을 만든다.

영상 작업 또한 앞선 ‘무제(영원히)Untitled(Forever)’가 설치된 전시장처럼 능동적인 관람 태도가 필요하다. 4개의 벽면에서 영상이 랜덤으로 이어지며 상영된다. 화면이 나오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관람객의 모습은 미디어에 영향을 받고 이에 이끌리며 사는 우리 삶 자체를 은유하는 것 같기도 하다.

 

여자 석고상의 옆면을 찍은 사진에 ‘당신의 시선이 내 뺨을 때린다(Your gaze hits the side of my face)’는 텍스트가 배치됐다. 1980년대 미디어에서 남성의 시선 위주로 노출됐던 여성의 이미지에 대한 작가의 코멘트다.(사진=김금영 기자)

전시장에 국한되지 않고 벽화, 신문잡지 기고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쳐 온 작가의 흔적도 볼 수 있다. 아카이브룸은 대중문화와 예술의 경계에서 잡지, 신문, 거리의 광고판, 포스터 등 우리가 생활 가까이에서 접하는 매체를 활용해 대중과 활발히 소통해 온 작가의 작업 세계를 폭넓게 보여준다. 작가의 육성이 담긴 인터뷰 영상, 잡지와 신문에 기고한 작업 등이 마련됐다.

김경란 큐레이터는 “바바라 크루거는 우리가 살고 있는 당대의 주요 이슈에 대해 대담하고 적극적으로 발언해 왔다. 이번 전시는 동시대 이슈들에 깨어 있는 감각으로 질문하고 토로하고자 했던 작가의 의도를 담았다”며 “우리의 무뎌진 비판의식을 흔들어 깨우고, 삶의 주체로서 능동적으로 사고할 수 있도록 자극을 받으며, 이를 통해 관람객들이 자신을 삶의 주체로 되돌려놓는 유의미한 질문과 해석을 시작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4개의 벽면에서 영상이 랜덤으로 이어지며 상영되는 공간. 화면이 나오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관람객의 모습은 미디어에 영향을 받고 이에 이끌리며 사는 우리 삶 자체를 은유하는 것 같다.(사진=김금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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