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기업] PART 3. “세상의 수많은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는 미술관”

김경란 아모레퍼시픽 미술관 큐레이터 인터뷰

다아트 김금영 기자 2019.07.23 15:00:46

김경란 아모레퍼시픽 미술관 큐레이터.(사진=김금영 기자)

(CNB저널 = 김금영 기자) 지난해 5월 용산 아모레퍼시픽 본사로 이전해 신축, 개관한 지 어느덧 1년,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은 바바라 크루거의 전시를 선보이며 앞으로 미술관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있었다. 전시를 기획한 김경란 아모레퍼시픽미술관 큐레이터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용산 신축 개관전 작가로 참여했던 라파엘 로자노헤머의 작품.(사진=아모레퍼시픽)

- 지난해 용산 신축 개관전 작가로 멕시코 태생의 캐나다 출신 작가 라파엘 로자노헤머를 선정해 주목받았다.

“처음 전시를 기획할 땐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소장 작품을 중심으로 작가 선정이 이뤄졌다. 고미술부터 현대미술까지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의 컬렉션 폭이 방대하다. 이 소장 작품들을 아모레퍼시픽 전국 사옥에 설치하고 6개월에서 약 1년 주기로 전시 작품을 바꾸면서 직원들뿐 아니라 방문객도 예술을 친근하게 접할 수 있도록 해 왔다. 이 가운데 라파엘 로자노헤머 작가의 작품에 대한 반응이 유독 좋았고, 개관전 작가로 선정했다.

작품 자체도 훌륭했지만 아모레퍼시픽이 지닌 ‘열린 소통’ ‘상호작용’이라는 가치와 라파엘의 작품이 맞닿았다. 움직임을 주요소로 하는 그의 작품은 관람객과의 상호작용이 매우 중요하다. 관객의 심장박동에 맞춰 전구가 깜빡이는 인터랙티브 설치 작품 ‘펄스 룸(Pulse Room)’ 등 개관전에서도 이 점이 많은 호응을 받았다.”

 

바바라 크루거의 텍스트 작업. 40여 년 동안 차용한 이미지 위에 텍스트를 병치한 고유한 시각 언어로 세상과 소통해 온 작업들을 현재 아모레퍼시픽미술관에서 볼 수 있다.(사진=김금영 기자)

- 라파엘 로자노헤머에 이어 이번엔 바바라 크루거다. 미술관이 용산 신축 개관 1주년을 맞은 시점에 전시 작가로 바바라 크루거를 택한 이유는?

“예술에서는 그냥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바바라 크루거의 작업이 그렇다. 40여 년 동안 대중문화와 예술의 경계에서 전시를 비롯해 잡지, 신문, 거리의 광고판, 포스터, 비닐 봉투 등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며 작업해 온 그는 일관되게 사회의 여러 현상에 대한 코멘트를 던져 왔다. 당연하다고 믿는 것들은 더 이상 궁금하지 않고, 그렇게 관심에서 잊힌다. 하지만 바바라 크루거는 이 당연한 것들에 질문을 던지고,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들을 주체적으로 다시 생각하게 하며 삶을 보다 능동적으로 살 수 있도록 돕는다.

그의 이런 코멘트들은 사회적인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다. 여성의 얼굴을 배경으로 ‘당신의 몸은 전쟁터다(Your body is a battleground)’라는 문구를 새긴 포스터는 1989년 미국 워싱턴에서 벌어진 여성의 임신 선택권 확보를 위한 시위를 알리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여성의 출산권에 대한 코멘트를 작가가 던졌고, 여기에 반응한 사람들이 출산과 낙태에 관한 서로의 의견을 활발하게 나눴다.

이밖에 ‘나는 쇼핑한다, 고로 존재한다(I shop therefore I am)’ 등 소비가 위주가 된 자본주의 사회에 대해 유머를 섞어 위트 있는 코멘트를 던지는 등 작가만의 방식으로 새로운 담론이 펼쳐질 수 있는 장을 만드는 작업을 이어 왔다. 이번엔 그 장이 아모레퍼시픽미술관에 펼쳐진다.”

 

바바라 크루거의 작업들은 우리가 의심하지 않았던 것들을 다시 돌아보게끔 이끈다. 여성의 얼굴을 배경으로 ‘당신의 몸은 전쟁터다(Your body is a battleground)’라는 문구를 새긴 포스터는 1989년 미국 워싱턴에서 벌어진 여성의 임신 선택권 확보를 위한 시위를 알리는 취지로 만들어졌다.(사진=김금영 기자)

- 라파엘 로자노헤머와 바바라 크루거 모두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의 전시를 통해 한국 관람객들과 첫 만남을 가졌다는 점도 특별하다.

“라파엘 로자노헤머의 첫 번째 아시아 회고전이자 첫 한국 개인전, 그리고 바바라 크루거의 아시아 첫 개인전이 아모레퍼시픽미술관에서 이뤄졌다. 바바라 크루거의 작품에 많은 관심이 있었는데, 작가 또한 아모레퍼시픽 본사를 설계한 건축가 데이비드 치퍼필드에 대해 알고 있었고, 미술관 공간을 마음에 들어 해 선뜻 응했다.

이런 점도 전시 작가를 선정할 때 주요 요소다. 이미 국내에 많이 알려진 작가보다는,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좋은 작가들의 작업을 선보이고 싶다. 바바라 크루거도 아시아 첫 개인전이라 열의를 보였다. 한글 텍스트 작업도 먼저 하고 싶다고 제의했다. 덕분에 그간의 작업과 신작까지 아우르는 자리가 잘 마련됐다.”

 

전시장에 국한되지 않고 벽화, 신문잡지 기고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쳐 온 바바라 크루거의 흔적을 볼 수 있는 아카이브룸.(사진=김금영 기자)

- 태평양박물관부터 시작된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은 화장품기업 아모레퍼시픽에 소속돼 있다. 기업의 운영 방향과 미술관이 추구하는 전시의 방향 사이 접점은?

“아모레퍼시픽은 '새로움'과 '아름다움'을 탐구하는 기업이다. 아모레퍼시픽미술관 또한 이 아름다움의 가치를 전시를 통해 전한다. 이번 전시 작가인 바바라 크루거 또한 작업을 통해 현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의 아름다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하는 질문들도 던진다.

아름다움에 대한 이야기가 한정적일 것 같지만 오히려 풀어낼 이야기가 무궁무진하다. 아름다움은 획일적이지 않고 다양한 측면을 지녔다. 특히 시간이 흐를수록 각자의 개성을 아름다움으로 인식하고 인정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아름다움에 대한 담론도 보다 다양해지고 있다. 추한 것들에서 발견되는 아름다움도 있는데, 이에 관한 이야기도 추후 전시에서 풀어보면 흥미로울 것 같다.”

 

유명 모델들의 얼굴 위에 빨간 박스로 써진 문구들은 “나는 쿨해(I’m cool)” 등 자아도취에 빠진 내용도 담겼다. 불완전한 자의식으로 인해 미디어가 제시하는 미의 기준이나 방향에 휩쓸려 따라가는 건 아닌지 생각하게끔 하는 바바라 크루거의 작품이다.(사진=김금영 기자)

- 1년 동안 많은 방문객들의 발걸음이 미술관에 이어졌겠다.

“이번 전시의 경우 젊은 관람객들이 특히 많이 방문했다. 평소엔 미술관 주변에 사는 분들도 많이 찾는다. 신용산역에서 가까워서 그런지 외국인 관광객의 접근성도 좋다. 그래서 사람들의 접근성이 보다 높아질 수 있는 대중성 있는 전시를 꾸리기 위해 더욱 신경 쓴다.”

- 미술관을 벗어나 야외에서 펼치는 공공미술 프로젝트 에이피맵(apmap)도 꾸준히 이어 왔다. 올해엔 ‘에이피맵 2019 제주’를 제주 오설록 티뮤지엄 일대에서 7월 20~9월 22일 진행했다.

“에이피맵은 국내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역량 있는 신진 작가를 발굴하고, 실험적 예술 창작을 지원하기 위해 2013년 시작됐다. 2013년 화장품통합 생산물류 기지인 오산 뷰티캠퍼스, 2014년 제주의 서광다원/오설록, 2015년 용인의 기술연구원/인재개발원, 2016년 서울 신용산의 신축현장까지 해마다 프로젝트가 열리는 장소의 특성에 맞춰 새롭게 기획해 선보였다.

올해엔 ‘제주 사람’을 주제로 젊은 작가와 건축가 15팀이 참여했다. 제주 사람들의 삶의 현장을 직접 담사하고 그곳에서 얻은 영감을 바탕으로 제작한 신작을 선보였다. 미술관 공간에서의 전시와는 또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는 프로젝트다.”

 

아모레퍼시픽은 미술관뿐 아니라 야외에서 펼치는 공공미술 프로젝트 ‘에이피맵(apmap)’을 2013년부터 진행해 왔다. 사진은 올해 제주에서 진행된 에이피맵에 설치된 최정우 작가의 ‘편견없이 이야기 듣는 장치’ 작품.(사진=아모레퍼시픽)

- 앞으로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이 걸어갈 길은?

“현재까지는 해외 작가 작업을 주로 선보였는데, 내년엔 한국 작가의 전시도 선보이려 한다. 지하의 미술관 공간뿐 아니라 1층에 있는 쇼케이스 공간에 한국의 재능 있는 젊은 작가들의 전시를 선보일 계획이다. 기획전을 꾸준히 선보이고, 추후 미술관이 더 자리 잡으면 공모전도 진행해보고 싶다.

무엇보다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이 문화의 광장이 되길 바란다. 솔직히 수익적인 측면만 고려했다면 건물에 미술관 대신 명품매장이 들어서는 게 이득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태평양박물관부터 현재의 아모레퍼시픽미술관까지, 아모레퍼시픽은 문화예술을 통한 사회 공헌의 힘을 믿고 그 길을 걸어 왔다. 사람들과 교류, 소통하는 힘이 예술에 있다.

사람들은 좋은 전시를 보고 난 뒤 시간을 두고 회자하며 ‘그 전시 좋았다’고 말하곤 한다. 그 이야기가 아모레퍼시픽미술관에서 나올 수 있도록 좋은 전시를 꾸리고 싶다. 단순히 형식적으로 운영되는 기업 미술관이 아니라 진정으로 대중과 소통하고, 한국 미술계에도 기여할 수 있는 그런 뜻깊은 공간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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