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정 평론가의 더 갤러리 (30) 이정형, ‘화이트 노이즈’] ‘전시를 돕는 것들’을 전시하다

다아트 이문정(미술평론가, 연구소 리포에틱 대표) 기자 2019.08.12 10:00:49

(CNB저널 = 이문정(미술평론가, 연구소 리포에틱 대표)) 대부분의 전시장은 관객들이 안정적이고 쾌적한 상태에서 작품에 몰입할 수 있도록 꾸며진다. 전시의 주제, 작품의 메시지와 재료적이고 형식적인 특성, 전시 공간, 관객의 동선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최대한 효율적으로 구성되는 것이 전시장이다. 설치미술, 장소 특정적 미술이 익숙해진 오늘날 작품을 어디에, 어떻게 놓는가는 더욱 중요해졌다. 쉽지 않은 과정을 거쳐 전시회가 문을 열면 사람들은 전시장을 방문하고 작품을 감상한다. 엄밀히 말해 작품만 보는 것은 아니다. 작품 외에도 많은 것들이 전시장을 채운다. 우리는 작품을 둘러싼 가벽과 가림막, 조명, 좌대, 캡션, 관객, 움직임, 소리, 그리고 이 모두가 함께 만들어 내는 관계까지 경험한다. 아쉽지만 전시가 끝나면 이 긴밀한 관계는 바로 허물어진다. 그 과정에서 나온 부산물들을 폐기된다. 짧은 시간 동안 시작과 끝, 생산과 파괴가 이뤄지는 것이 전시의 과정이다.

이정형은 수집한 전시 부산물들을 작품으로 되살려내는 작가다. 처음부터 짧은 생명만을 약속받았던 오브제들은 작가의 손길로 예술이라는 맥락에 다시 놓이게 되었다.

작가는 설치하고 허물기를 반복하는 전시 공간 디자이너로서의 활동에서 영감을 받아 전시(장)의 환경과 조건, 전시 시스템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이야기 전개를 위한 주인공들은 전시 부산물과 그것이 품고 있는 수많은 과정의 흔적들이다. 흔적이 담아내는 기억도 당연히 포함된다.

 

이정형, ‘세 개의 어중간한 보(Three beams)’, painted mdf, mixed media, dimension variable, 2019, 사진 제공: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인사미술공간

작품이 된 전시 부산물들은 소음이지만 안정감을 느끼게 하는 백색소음을 닮았다. 나를 둘러싼 환경을 느끼게 하는 설치물들은 상실되었던 관계를 환기시키고, 또 다른 관계를 만들어 낸다. 조금만 더 상상력을 발휘하며 전시장에 머물러 본다. 벽에 붙여진 사진, 바닥 위의 유리 조각, 비스듬히 놓인 붓, 거울, 공간을 가로지르는 선들. 이 부산물들이 처음 등장하고 해체되었던 공간에서는 무슨 일들이 있었을까? 인사미술공간에서 전시를 준비하는 시간 동안에는 어떤 행위와 어떤 소리가 생성되었을까? 얼마나 많은 시간의 지층들이 쌓였을까?

 

이정형, ‘화이트 노이즈(White noise)’, mirror, digital print, vinyl, string, wood, pedstool, bronze, dimension variable, 2019, 사진 제공: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인사미술공간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불편함에 주목하며 당연시되는 전시장의 규칙들을 벗어난다. 익숙한 방식으로는 감상할 수 없는 전시다. 몸을 숙이고 돌아봐야 하는 전시장, 전시장 바닥에서 깜박이는 조명, 발걸음을 조심하게 만드는 설치물들은 균형감을 깨뜨리는 불편한 전시 공간을 제시한다. 불편해지니 평상시에 인지하지 못했던 부분들이 눈에 들어온다. (작품임이 분명하지만) 작품인 듯 아닌 듯, 완성인 듯 미완성인 듯 놓인 설치물들은 그 어디에서보다 강한 존재감을 발산한다. 보이지 않는 선으로 연결된 관계적 공간이란 이런 것이다.

이정형의 작업은 불편하면서도 편안하다. 그의 전시장은 부드러운 긴장감이 감도는 공간이다. 마침표가 아닌 쉼표 혹은 줄임표가 생각나는 설치의 방식은 모자람이 아닌 여유로움을 전달한다. ‘미완성적인 상태를 선호하고 완벽하게 완성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는 작가의 태도를 달리 보면, 멈춰 있음을 거부하는 것과 같다. 그토록 시간을 머금은 오브제들이 멈춤의 상태에 놓인다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다.

 

작가 이정형, 사진 제공: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인사미술공간

“100% 가능하지만 85~90%에서 멈춘다”
이정형 작가와의 대화


Q. 이번 전시 ‘화이트 노이즈(White Noise)’에서 인사미술공간의 공간 자체, 특히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는 지점에 주목했다는 점이 흥미롭다. 작가의 의도가 잘 전달되었다고 생각한다. 전시장 1층에 들어섰을 때 머리를 숙이고 들어가야 하는 ‘세 개의 어중간한 보’(2019) 때문에 적잖이 당황했다. 2층의 설치들도 그 배치나 시각적인 부분이 편안하지 않았다. 공간을 경험하는 데에 방해된다고 느껴질 정도로 불편한 장소 특정적 작업이다. 무언가 균형감이 깨진 것도 같았다. 작가로서 활동하지만 동시에 다른 전시 공간 조성도 하기 때문에 공간을 효율적으로, 쾌적하게 구성하는 방법을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그런데 반대쪽을 향했다.

A. 여태까지 불편함을 전제로 전시를 계획한 적은 없었다. 개인마다 다르게 느끼겠지만 인사미술공간은 작품을 설치하기 쉽지 않은 공간이다. 아무래도 전시 공간 디자이너 일을 하면서 다양한 사례들을 경험하다 보니 공간의 장단점, 한계, 활용 가능성 등의 특징을 포착하게 된다. 또한 물리적 특징뿐 아니라 공간의 지리적 위치, 역사와 같은 서사까지 종합적으로 보는 편이다. 사실 1층 설치의 경우 보를 30cm 정도 아래로 더 내리고 싶었다.

Q. 작품들이 모두 전시 장소와 긴밀한 설치다. 작품의 위치를 정하거나 공간을 구성할 때 계획성과 즉흥성의 비율이 어느 정도인지 궁금하다. 불편함을 느끼게 하려면 오히려 계획이 더 필요할 것도 같다.

A. 1층과 지하는 철저히 계획된 계산 하에 접근했고, 2층의 경우 어느 정도 짜여진 바탕 위에서 즉흥적으로 선택한 부분이 큰 것 같다. 공간 인식의 기본은 치수이기 때문에 수학적으로 수치를 표현하는 부분도 있다. 그러나 나는 수치가 사람의 감각으로 훼손되길 원한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사람의 손에 의해 여지가 남은 상태에서 작업을 마감한다. 그런 감각적 영역이 내가 작업으로 소화하고자 하는 부분이며, 내 작업의 조형 언어라고 생각한다.

Q. 전시가 끝나 철거되고 버려지는 부산물들을 가져다 작업으로 되살린다. 작가 본인의 개인전에서 재료를 가져오는 것이 아닌데, 혹시 제재를 받은 적은 없었는지 궁금하다.

A. 전시장 조성에 사용된 대부분의 설치물은 전시가 끝남과 동시에 폐기물이 되는 경우가 많아 가져오는 데 무리는 없다. 독창적인 이미지나 형태는 가져오지 않는다.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에는 창작자에게 허락을 받으면 된다. 일례로, 페리지갤러리에서의 ‘백현진 개인전: 그 근처(In the Neighborhood)’(2017)에 발표되었던 백현진 작가의 벽 작업에서 나온 부산물을 사용하고 싶어 작가의 동의하에 작가 이름을 명시하고 사용한 적이 있다.
 

이정형, ‘화이트 노이즈’, 사진 제공: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인사미술공간

Q. 존재의 의미가 사라진 전시의 부산물을 예술로 되살리는 이정형의 작업은 예술과 일상, 예술적 창조와 노동의 경계를 넘나든다. 그러나 폐기되었을 사물이 작가의 선택과 재조합에 의해 예술적 오브제로 탈바꿈되는 이 상황이 오히려 예술과 일상의 경계를 공고히 하는 것일 수도 있다. 예술가라는 존재의 권위가 부각되는 것은 아닌가?

A. 일상의 사물이 예술의 언어 중 하나로 변한 것은 맞지만, 아직까지 나의 작품이 예술로서 막강한 권위를 가졌다고 느낀 적은 없다. 만약 그런 일이 생긴다면 오히려 예술의 권위를 흡수하는 것이기 때문에 더 흥미로운 상황이 벌어질 것 같다. ‘부산물’(2015~)은 언어적인 것을 시각적인 것으로 치환한 언어체계로서의 작업이다. 전시 부산물에 예술의 언어를 부여하고 작품으로서 기능하게 바꾸는 거다. 즉, 일상의 노동 현장에서 마주한 다양성 중 예술의 언어로 들어올 수 있는 게 무엇인지 고민하고, 예술의 언어로 바꾸는 작업을 통해 예술의 맥락 안으로 들여오는 것이다. 단순히 부산물을 전시장에 가져다 놓았다고 갑자기 예술이 되는 것은 아니다.

Q. 혹시 본인의 개인전에 전시되었던 오브제들도 해체되어 다음 전시에 재창조되는가? 만약 그렇다면 독립적으로 완결된 작품은 없는가? 전시를 마치면 작품들은 어떻게 보관되는가?

A. 독립된, 단독 작품이라고 말하기 모호한 것들이 있긴 하다. 또한 전시되었던 작품의 일부를 가져다 새로운 작업의 부속으로 사용할 때도 있지만 그렇게 많지는 않다. 이전 작품의 일부를 사용한다는 방법론을 갖고는 있지만, 나의 작품끼리 교차시키고 재조합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전시가 끝난 작품은 부속품의 형태로 정리해 보관한다. 이후 해당 작품을 전시할 때에는 동일하게 다시 조합한다.

Q. 전시 부산물 외에 따로 수집하는 것은 없는가? 그리고 수집한 오브제들은 어떻게 정리하는가?

A. 디자인 프로덕트를 수집한다. 1950~60년대의 생산품들을 좋아하는데, 전시 부산물들을 모으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 수집품을 정리하는 나만의 규칙이 있다. 전시 부산물의 경우에는 대부분 바나나 상자에 넣어 보관한다.

Q. 작업의 특성 상 프리 오픈(pre-open)의 형식으로 전시를 진행해도 좋을 것 같다.

A. 내 작업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지점이 있어 보인다. 전시 기간에 설치부터 철수까지를 포함시켜도 재미있겠다. 그러나 프리 오픈은 쉬운 일이 아니다. 누군가의 시선을 느끼며 작업을 진행해야 한다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것 같다.
 

이정형, ‘천장이 천장을 볼 때(When the ceiling sees the ceiling)’ collected lights from exhibition site, dimension variable, 2019, 사진 제공: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인사미술공간

Q. 작가 이정형을 소개할 때 전시 공간 디자이너로 활동한다는 내용이 빠지지 않는다. 노동의 과정을 기록, 수집하고, 전시 부산물을 작품의 재료로 활용하기 때문일 것이다. 본인의 작업은 분명 전시의 개념, 전시 공간, 예술과 노동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고, 본질을 숙고하게 이끈다. 이와 같은 작업을 통해 작가가 궁극적으로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무엇인가? 이런 질문을 하는 이유는 사회적이라기보다 개념적이고 형이상학적인 탐구를 한다는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A. 작업의 첫 출발지점은 젊은 작가가 전시 환경에서 노동을 하고, 노동의 현장에서 파생된 부산물을 작품으로 다시 전시장에 들여오는 상황을 제시함으로써 전시 시스템과 제도, 그것의 역할을 생각해보는 것이었다. 사람들의 예상과 달리 나는 노동과 예술의 관계를 논할 때 부정적 입장을 갖지 않으며, 나의 작업이 노동이라는 키워드만으로 해석되길 원하지 않는다. 나는 궁극적으로 전시의 환경과 조건에 관한 이야기하고 싶다. 작업의 조건, 전시장의 조건, 작업과 전시장의 관계, 전시라는 시스템이 내 작업에서 드러났으면 좋겠다. 전시 부산물이 전체를 보여주는 단서가 되길 바란다. 또한 이 모두가 시각적으로 아름답게 표현되는 것에 관심이 많다.

Q. 아름답게 표현한다는 것을 조금 구체적으로 설명해주면 좋겠다.

A. 물론 매우 주관적인 취향의 문제이다. 나는 전시장에 작업을 설치할 때 85~90%까지의 완성도가 만들어 내는 상태에 관심이 많다. 완성도를 100%까지 올릴 수도 있는데 일부러 약간 못 미치는 지점에서 멈추는 것이다. 나는 미완성적인 상태를 선호한다. 완벽하게 완성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 이것은 대충 만든다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의미다. 전시 부산물을 작품으로 만들려면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작품을 완성한 후에도 전시를 위해 다양한 효과들을 결정하고 실현하려면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한다. 전시 부산물을 그냥 철거 중인 현장처럼 가져다 놓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작가로 활동하면서 한 가지 주제를 계속 이야기한다는 것은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의 작업이 최종적으로 어떤 방향으로 갈지 정해두진 않았다. 정해진 정답을 향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다만 목소리를 내는 방법에 연속성만큼 중요한 것은 없기 때문에 오랫동안 실천하고 지속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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