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정 평론가의 더 갤러리 (38) 2019 아르코미술관 중진작가 초대전] 바탕 금색과, 표면 금색의 이중주

다아트 이문정(미술평론가, 연구소 리포에틱 대표) 기자 2020.01.13 09:57:25

(CNB저널 = 이문정(미술평론가, 연구소 리포에틱 대표)) 올해 아르코미술관의 중진작가 초대전에는 각각 대구와 대전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배종헌과 허구영 작가의 작업이 소개되었다. 층별 개인전이자 전체 2인전이라는 형식으로 진행된 이번 전시가 마무리될 즈음 작가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1 ‘미장제색’
배종헌 작가와의 대화


Q. ‘미장제색’은 작가가 목판에 금색 물감을 칠한 뒤 그 위에 청색 유화를 칠하고 철 핀 등으로 긁어내어 완성한 산수화다. 두 색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청색의 경우에는 어떤 색을 사용하는지 구체적으로 말해줄 수 있는가? 어떻게 보면 붓의 역할을 해 주는 물감을 긁어내는 도구에 대한 설명도 듣고 싶다.

A. 여러 실험의 과정 중에 선택된 색이다. 무엇보다 이상향으로서의 자연을 생각했을 때 청색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그리고 청색의 보색과 같은 색은 무엇일까 고민하다가 금색을 선택했다. 현대를 상징하는, 콘크리트 문명에 반대되는 색으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아프고 슬픈, 부정적인 감정을 긍정적인 쪽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차원의 색이라 생각했다. 청색의 경우 주로 코발트블루와 울트라마린 두 색을 배합해서 사용했다. 나는 물감을 긁어내는 도구를 니들(needle)이라 부르는데, 나사못 등을 구부리고 용접해서 만든 다양한 형태의 니들을 사용한다.
 

배종헌, ‘미장제색’ 전시 전경, 2019, 사진 제공=아르코미술관
허구영, ‘여전히 나에게 뜨거운 이미지 중 하나’, 전시 전경, 2019, 사진 제공=아르코미술관

Q. ‘미장제색’이라는 제목도 그렇고, 금색이 사용되었다는 점에서 한국의 전통 산수화가 연상된다. 혹시 작업을 진행하면서 전통의 재해석과 같은 부분을 염두에 두었는지 궁금하다.

A. 주관적인 느낌일 수 있겠지만 작업실 벽을 보고 인왕제색도를 떠올렸다. 나의 작품과 인왕제색도를 나란히 놓고 보면 누군가는 닮지 않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첫인상은 그랬다. 물론 내가 한국인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한국적 정서라고 할 만한 무언가가 담길 것이다. 그러나 그와 같은 부분을 생각하거나 의식하며 작업하지 않았다.

Q. 산수화를 완성하기 위해 물감을 긁어내는 행위는 인간의 폭력성을 드러내는 것처럼 보인다. 한편 상처를 내는 행위를 했는데 자연의 형상이 만들어지는 상황은 인간의 문명에 상처를 내 자연을 향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양가적인 의미를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A. 긁어내는 행위를 폭력을 가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상처를 가시화시키는 작업이라 말하고 싶다. 상처를 드러내기 위해 긁어내는 거다. 모두 상처를 감추려고만 하는 시대에 그것을 드러내고자 했다.

나는 자연이 인간과 분리된 것이 아니라 인간이 만든 이미지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오늘날 자연은 이미지화된 자연, 소비되는 대상으로서 존재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연을 문명과 완벽히 동떨어진 것으로 생각하지만 나는 오늘날 그런 온전한 자연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미장제색’이나 ‘터널산수’ 등이 그런 현실을 슬퍼하거나 자연을 보호하자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작업은 아니다. 오히려 매연으로 인해 더러워진 벽에서 자연을 보게 되는 현실, 그 현실을 받아들이는 과정으로서의 작업이라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현실을 비판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작업도 필요하고 가치가 있는 중요한 활동이다. 그러나 나의 작업에선 그런 이야기보다 평범한 사람으로서 인공적인 세상 속에서 자연을 찾아내고 바라보는 상황이 담겨있다. 인간이 생존을 위해 하는 행위의 많은 수는 파괴와 오염을 수반한다. 모든 소비 활동도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그와 같은 행위를 전혀 하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나는 현실을 조금 더 긍정적으로 바라보려 했다. 나에게 더럽혀진 곳에서 아름다운 풍경을 찾아내는 순간은 삶의 태도를 바꾸는 시간이다. 궁극적으로는 인간이 유한한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여 현실을 조금 더 긍정적으로 보자는 거다. 그게 내 작업이 담고 있는 내용이다.
 

배종헌, ‘절골입구N1-01_콘크리트 균열과 생채기, 얼룩, 그리고 껌딱지로부터’, 자작나무 목판에 유화, 70 x 120cm, 2019, 사진 제공=아르코미술관
배종헌, ‘절골입구N1-01_콘크리트 균열과 생채기, 얼룩, 그리고 껌딱지로부터’, 종이에 혼합매체, 21 x 29.7cm, 2019, 사진 제공=아르코미술관

Q. 이번 전시에서 특별히 신경 쓴 부분이나 관객이 주목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

A. 전시된 작품들 모두가 다 중요하지만, 특히 ‘미장제색’과 ‘터널산수’에 공을 많이 들였다. 이 작품들은 내 전체적인 작업의 흐름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이번 전시의 제목으로도 사용된 ‘미장제색’은 내 작업의 방향이 이전과는 다른 차원으로 선회하게 된 전환점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터널산수’는 작업실이나 집, 내가 사는 동네의 벽이나 바닥처럼 정말 가까운 주변의 것들만 바라보던 나의 시야를 확장시킨 작업이다. 생활인으로서 지나갈 수밖에 없는 장소, 내가 원하지 않지만 내가 가야 하는 길에서 만나게 되는 이미지들이 구체화 되어 작업으로 이어진 것이 ‘터널산수’이다. 고속버스를 타고 가던 중 버스가 터널에서 속도를 줄였는데, 순간 벽의 검댕이 눈에 들어왔고, 산수처럼 보였다. ‘미장제색’을 진행하면서 모든 바닥이나 벽면들이 자연의 풍경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것도 매우 아이러니한 일이다. 현대인의 삶의 패턴처럼 빠르게 움직였다면 아무것도 보지 못했을 거다. 속도를 늦췄기 때문에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거다. 나에게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삶의 속도에 변화를 주는 것만으로도 삶을 대하는 태도가 변할 수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한 작품이다.


2 ‘여전히 나에게 뜨거운 이미지 중 하나’
허구영 작가와의 대화


Q. 작품에 대한 설명을 듣지 않으면 어렵고 난해해 보일 수도 있는 작업이라 생각된다. 물론 모든 작품을 충분히 이해하려면 감상자의 노력이 필요하다. 감상자가 자신만의 관점에서 작품의 의미를 찾아내는 과정도 중요하다.

A. 내 작품 앞에서는 상반되는 반응이 동시에 나올 거라 예상한다. 전시장은 예술적 장소다. 예술이라는 그물망 안에서 작품을 대하기 때문에 어렵게 느끼는 것이라 생각한다. 예술이 갖는 위상을 바탕에 깔고 작품을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무언가가 전시되어 있어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 미술의 장르나 가치 평가 등에 대한 고정된 태도가 없다면 작품이 어렵다, 쉽다는 차원의 문제로 다가오지 않을 것이다. 물론 공적 장소에서 발표하는 작품이기 때문에 나의 만족만을 위해 작업하지 않는다. 자기몰입 속에서 작업하지만 다른 이의 시선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균형 잡기를 할 수밖에 없다. 의미를 단정하기보다는 예민한 소통을 원하는 작업이라 말하고 싶다.
 

허구영, ‘여전히 나에게 뜨거운 이미지 중 하나’, 전시 전경, 2019, 사진 제공=아르코미술관
허구영, ‘여전히 나에게 뜨거운 이미지 중 하나’, 전시 전경, 2019, 사진 제공=아르코미술관

Q.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지속적으로 생각한 개념이나 주제가 있었는가?

A. 전시된 작품에 적혀 있는 텍스트들에 압축적으로 나타나 있다. 표현의 한계를 느끼기도 하지만, 언어는 좋은 매개이다. 그런 언어에서 시작해 이질적이지도 않고 완전히 잡히지도 않는 새로운 무언가를 제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이번 전시에서는 개별 작품들이 놓인 전시장 전체가 하나의 장면으로, 즉 단일체로 보이는 동시에 작품 하나하나가 개별체로도 보일 수 있도록 설치했다. 어중간한 배치, 배열 정도라 생각하면 된다. 섞이는 듯 섞이지 않는 듯 모호한 상태이다. 하나의 장면을 연출하는 데에 관심을 가졌다기보다는 작품과 작품에 적힌 텍스트 속 단어들을 통해 생각의 파생물이 나오는 작업이 되길 바란다. ‘은근한 설치’라고 표현하는 게 맞을 것 같다. 명쾌하게 딱 떨어지는 작업이 아니다.

Q. “현재의 작가를 확고하게 구성하고 있는 요소들의 정체에 대해 탐색하고 정체된 미학 혹은 미술 자체에 대한 질문으로 그 탐색을 확장시킨다”는 작업에 대한 설명을 읽었다. 이에 관한 작가의 구체적인 이야기를 듣고 싶다.

A. 정체된 미술에 질문을 던지는 것은 현대미술의 기본 전제라 생각한다. 여기서 ‘정체된’이란 단어는 역사화, 정전화 되어 한 지점에 포획된 상태를 뜻한다.

인간 개인의 정체성이라는 것은 구성된다고 할 정도로 신뢰하기 어려운 것이다. 지금 내가 생각하는 나다움이라는 것은 결국 지금의 인식 수준에 맞게 규정된 것이다. 따라서 온전한 참모습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그에 대해 끝없이 숙고하는 것이 나의 작업이다. 미술은 스스로에 대한 질문과 몰입을 하기에 탁월한 장르라 생각한다. 미술이 뚜렷한 정답을 추구하는 장르라고 한다면 이런 질문을 던지지 못할 거다. 그런데 미술은 명확한 한계지음으로부터 자유롭고 여지가 많다.

Q. 작가에게 기억이란 무엇인가? 기억은 한 사람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간단히 말해, 나라고 할 수 있는 심리적인 증거물이 기억이다.

Q. 설치된 작업에서 표면이 금색인 오브제들이 눈에 들어온다. 금색은 여러 의미를 담아내는 색채이다.

A. 입체적 오브제에 색채를 칠하는 것은 회화적인 표현을 하는 행위이다. 이 행위는 재료가 가진 본래의 물성을 소거한다. 표면을 덮음으로써 그 아래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게 된다. 일종의 신비성이 생기는 거다. 금색을 선택한 이유는 금속성이 느껴지는 금색이 다른 색에 비해 회화성이 강하지 않다고 느껴져서이다. 과거에서부터 이어져 온 금이 가진 상징성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겠지만 그와 같은 의미를 담은 것은 아니다. 부연 설명하면, 이번에 전시된 작품들은 금박을 입힌 것이다. 손으로 만져가며 표면을 평평하게 덮는 작업은 붓으로 칠하는 것과는 다르다. 촉각적인 부분이 강조되기 때문에 심리적 애착이 커진다.

Q. 중진 작가로서 작업을 지속하게 하는 원동력이 있다면 무엇인가?

A. 개인마다 상황이 다 다르겠으나 작가로서 삶을 지탱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개인적으로 30대 중후반까지가 오히려 더 힘들 것 같다. 젊어서는 미술 외적으로 하고 싶은 것도, 관심이 가는 것도 많기 때문이다. 중진 작가로 불리는 지금은 어느 때보다 작업에 집중하고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는 시기이다. 작업이 더욱 삶의 중심에 자리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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