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정 평론가의 더 갤러리 (40) ] 작가 5인에 물어본 ‘과거의 나와 오늘의 나’

다아트 이문정(미술평론가, 연구소 리포에틱 대표) 기자 2020.02.17 09:19:40

(CNB저널 = 이문정(미술평론가, 연구소 리포에틱 대표)) ‘히든싱어’는 2012년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시작해 2018년 시즌 5까지 방송되었던 jtbc의 예능 프로그램이다. 노래를 부르는 목소리만으로 원곡 가수와 모창자를 구별해내는 히든싱어는 재미와 감동을 동시에 선사했다. 화제가 되었던 MBC ‘무한도전’의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도 추억을 되살려주며 사랑을 받았다. 현재 시즌 3이 방영 중인 jtbc의 ‘투유 프로젝트 - 슈가맨’도 마찬가지다. 출연한 가수의 대표곡을 듣다 보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그 노래가 발표되고 사랑받았던 당시를 떠올리게 된다. 잊고 있었던 과거의 삶과 사건들, 함께 했던 사람들이 떠오른다. 그때와 비교해 꽤 변한 가수의 모습만큼 나의 모습도 변했다.

과거의 기억을 소환하는 프로그램들을 보다가 불현듯 작가들이 생각났다. 우리 모두 그렇듯 작가들에게도 잊지 못할 순간들이 꽤 많을 것이다. 작가들은 오래전 자신의 모습을 어떻게 기억할까? 작가로서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비교할 때 가장 변한 것은 무엇이라 생각할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작가 다섯 명에게 두 가지 질문을 하고 답변을 부탁해 보았다.

1. 첫 개인전과 관련된 경험(사건, 감정 등) 중에서 기억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2. 신진 작가였던 나와 꽤 많은 경험이 축적된 현재의 나를 비교하여 작업을 진행하거나 전시를 준비할 때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이 있다면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작가와의 인터뷰 때마다 경험하는 일이지만 이번에도 예상하지 못한 답변이 나왔다. 매우 덤덤하게 상황을 묘사하는 작가도 있었고 조금은 감성적으로 느껴지는 표현도 나왔다.(답변은 가나다순.)
 

권오상, ‘New Structure – Hangang’ 700 x 550 x 780cm, Print on wood, Varnish, Steel, Urethane, Gold Leaf, 2018, 사진 제공 = 권오상 작가 

작가 권오상

1. 내 첫 개인전은 2001년 인사미술공간에서 열렸던 ‘권오상 개인전 - 데오도란트 타입(Deodorant type)’이다. 당시 김선정(아트선재센터 관장) 선생님께서 작품을 구입하셨던 것이 생각난다. 첫 작품 판매이기도 했고, 미술계의 유력 인사가 나의 작품에 관심을 가졌다는 것이 고무적이었기 때문이다. 작품의 보존 측면에서도 신진 작가였던 내가 소장하는 것보다 더 안정적이라 생각했다. 또 김홍희(백남준문화재단 이사장) 선생님께서 바쁘신데도 방문해주셨고, 뒤풀이가 없는 것을 아쉬워하셨던 것이 기억난다.

2. 신진 작가였던 시절에는 내가 모든 것을 다 직접 만들려 했다면, 지금은 업무를 어떻게 분담해야 더 효율적인지 판단하고 계획할 수 있게 되었다. 전문 인력과 협력해서 진행하는 작업 전체를 컨트롤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 제일 큰 차이일 것 같다. 그리고 신진 작가였을 때는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작품 제작이나 전시 준비를 위한 기금을 받기 위해 공모에 지원했었다. 지원 과정이나 관련 업무에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간다. 지금은 기금을 받지 않아도 작업이 가능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조금 더 작업에만 집중할 수 있다.
 

유나얼, ‘Days of Innocence 1’, 106 x 75cm, Acrylic, Conte, Collage & Mixed media on paper, 2019, 사진 제공 = 유나얼 작가

작가 유나얼

1. 2004년 대학로에 있던 고도갤러리에서 첫 개인전을 가졌다. 솔직히 말해, 당시에는 작가에게 개인전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잘 알지 못했다. 지금 기억하기로 전시된 작품 대부분은 드로잉이었고 여기에 약간의 설치 작품이 더해졌다. 그리고 전시장의 벽면 전체에는 노란색 방음 스펀지를 붙였다. 전시를 위한 준비를 마치고 - 첫 개인전부터 지금까지 개인전을 열 때마다 등장하는 설치 작품인 - ‘뮤직박스’(2004~present)에서 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전시장에 꽤 오래 머물렀던 기억이 난다. 한동안 그 자리를 떠날 수 없었다. 전시장이 나만의 특별한 공간으로 만들어지고, 그 공간 안에 내가 직접 선곡한 음악이 흐르고, 그것을 바라보고 들으며 느꼈던 기분은 이전에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것이었다. 지금까지도 잊을 수 없는 기억이다.

2. 신진 작가였을 때에는 완성도에 관한 생각보다 열정이 앞섰던 것 같다. 생각보다 행동이 앞섰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지금은 작품이나 전시의 완성도에 대한 생각을 하다 보니 예전보다 신중해졌다. 전시 공간과 전시될 작품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또한 나이가 들면서 창작자, 작가로서 책임감이 커졌다. 왜냐면 모든 예술 활동은 영적인 영역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람의 육체를 지배하는 것은 혼(soul)인데 바로 이 혼을 지배하는 것이 영(spirit)이다. 나는 이 ‘영’이라는 것이 인간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영적 활동인 미술을 하는 데 있어서 점점 더 큰 책임감을 갖게 된다.
 

이동기, ‘스누피(Snoopy)’, 240 x 410cm, Acrylic on canvas, 2018, ⓒDongi Lee

작가 이동기

1. 첫 개인전은 1993년 청담동에 있었던 온갤러리(On Gallery)에서 했다. 지금 기억나는 것은 갤러리의 면적(크기)이 매우 작았다는 것이다. 가로 x 세로가 약 2m x 4m 정도의 공간이었는데 아마도 내가 지금까지 전시했던 모든 곳을 통틀어 가장 작은 전시장일 것이다.

2. 달라진 것은 단지 작가를 둘러싼 환경들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갤러리와 미술관의 시스템 등과 같은 미술계 내부의 변화, 미술계 외부의 사회적 변화, 국제적 정세의 변화 같은 것들 말이다. 나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작품에 대한 문제의식은 작업 초기나 지금이나 큰 변화가 없는 것 같다. 외부적인 환경이나 유행하는 경향이 바뀐다고 해도 작가들이 갖는 기본적인 태도는 달라지지 않는다. 나는 심지어 르네상스 시대의 작가들과 현대미술 작가들 사이에도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한다. 작업하는 나에게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숙제는 작품이 어떤 방식으로 작가의 주관성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이완, ‘Wonder Wheel’, 500 x 200 x 450cm, Mixed media, 2005, 사진 제공 = 이완 작가

작가 이완

1. 막 대학을 졸업한 2005년 갤러리 쌈지에서 개인전을 준비했던 시간이 떠오른다. 당시 놀이동산의 놀이기구를 차용한 작업을 했다. 실제로 사람들이 탑승하는, 꽤 규모가 큰 작품이다 보니 작업할 공간은 물론이고 제작 비용도 넘어야 할 산이었다. 게다가 전시가 끝난 뒤 작품을 보관할 장소도 없었다. 전시 이후를 생각하지 않고 무작정 여행을 떠난 것처럼 작업했다. 겨울방학이라 비어있는 모교의 전공실 귀퉁이에서 작업을 진행했다. 겨울이라 정말 많이 추웠다는 것과 재료 하나를 사기 위해 100원 단위까지 계산했던 것이 떠오른다. 시스템에 불가항력적으로 반응할 수밖에 없는 개인을 주제로 개인전을 준비했는데 실제 나의 작업 과정도 그런 상황의 연속이었던 것이다.

2. 신진 작가인 20대는 무엇을 해도 가능한 시기일 것이다. 나 역시 ‘시간이 지나 후회하지 말고 무조건 해보자’라는 주의로 살았다. 그러다 보니 정말 재미있는 여행을 다녀온 것처럼 즐거운 추억들이 많이 떠오른다. 10년 전에는 아직 내 작업의 방향이 명확히 정해지지 않았었기 때문에 다양한 실패를 해볼 수 있었고, 그런 실패도 즐거웠다. 40대가 된 지금은 그동안의 경험들을 바탕으로 작업을 다듬어 나가는 시기라 생각한다. 한편 현실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들도 점점 많아졌고, 가정의 생계와 아이들의 안전도 생각해야 한다. 인생은 살아봐야 알 수 있고 경험을 해야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 20대 때에는 생각도 못 했을 지금의 삶이 무척 재미있고 흥미진진하다. 앞으로 다가올 삶을 떠올리면 가슴이 뛴다.
 

하태범, ‘Facade 1’, 150 x 300cm, Stainless steel, Paint, 2019, 사진 제공 = 하태범 작가 

작가 하태범

1. 2000년 서경갤러리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다. 정신없이 준비했고, 긴장도 했었다. 첫 개인전을 준비하면서 작가로서 대단한 청사진을 기대하고, 미래를 낙관적으로 보고 그런 것은 없었다. 부모님 두 분이 모두 작가셔서 조금은 냉정하게 현실을 바라보는 편이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나의 작업과 전시를 소개하기 위해 갤러리를 직접 방문해 리플렛을 전달하면서 느꼈던 냉소적인 분위기이다. ‘작가로서 앞으로 나아갈 길이 막막하겠구나’라는 생각을 했었다. 당시 나는 리플렛을 우편 발송도 하고 직접 전달하기도 했었는데, 선배들이 갤러리를 직접 찾아가야 한다고 조언해주었기 때문이다. 인사동의 갤러리들을 찾아다녔는데 반응이 그렇게 좋지만은 않았다. 내가 나의 작업을 생각하는 것과 달리 갤러리 관계자들에게 나는 수많은 작가 중의 한 명이었을 것이다.

2. 과거와 현재 사이에 큰 차이는 없다. 전시를 준비할 땐 매번 긴장과 설렘 그리고 막막함이 함께 한다. 전시가 다가오면 설레고 두근거리지만 오픈하고 나면 곧 허탈감에 빠진다. 만족감과 허무함의 공존이 계속 반복된다. 작업 과정에서의 차이라면 신진 작가라 불리던 시절에는 ‘무엇이든 일단 해보자’라는 생각이 우선이었다. 작품이 발표된 이후를 그다지 많이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지금은 진행 과정과 결과에 관한 생각을 충분히 한 뒤 실행에 옮긴다. 예전에는 그저 많은 사람들이 봐주면 좋겠다는 생각만 했었다면 지금은 작품성 인정, 활동 영역의 확장, 작품 판매와 같은 실제적인 부분에 대한 생각을 한다는 점도 달라진 부분이다. 또 경험이 쌓이다 보니 작품 설치나 공간 구성을 하면서 우왕좌왕하지 않는다. 주변 사람들의 의견도 더욱 겸허히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번에 리안갤러리 서울에서 열린 개인전 ‘프로세스 Process’의 경우 전시 디스플레이 과정에서 아내의 의견을 많이 반영했다. 작가인 나는 한 작품이라도 더 소개하고 싶어 자꾸 욕심을 내게 된다. 그럴 때 아내가 균형을 맞출 수 있도록 조절해줬다.


작가들의 답변을 한 자리에 놓고 보니 필자가 이들의 작품을 처음 마주했을 때의 기억이 떠오른다. 어떤 관점에서 보면 그들의 작업은 참 한결같다. 또 다른 관점에서 보면 그들의 작업은 참 많이 변했다.

오랜만에 친구나 동창을 만나면 자주 하거나 듣게 되는 말이 있다. ‘넌 어쩌면 그렇게 그대로니?’라는 말이다. 이와 관련해 몇 년 전 대학 동기들이 모인 자리에서 나왔던 이야기가 생각난다. ‘그대로’라는 말은 친구들 사이에서만 통한다는 것이다. 친구들은 서로가 예전 그대로라 느끼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이야기이다. 어찌 20년 전의 나와 오늘의 내가 같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이런 이야기가 꼭 슬픈 것은 아니다. 내 모습과 행동, 생각이 변할 만큼 시간은 흘렀고 그 시간은 다 유의미하다. 10대, 20대, 그리고 30대의 모습이 어땠었는지 완벽히 다 서술할 수는 없지만 인생의 전환기라고 여겨지는 순간, 가장 힘들거나 행복했다고 생각되는 순간의 기억은 흐릿하게나마 남아 있다. 그 모두가 합쳐져 때로는 한결같고, 때로는 변화된 오늘의 내가 존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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